이해보다 중요한 건 ‘인정’이었다

나를 품은 우리 09: 이해하려 애쓰지 않을 때 시작되는 진짜 사랑

by 낙천지명

결혼하며 아내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내가 두 번 정도 내 의견을 냈는데도 당신이 하겠다면, 그때는 무조건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결코 쉽게 꺼낸 말이 아니었다. 이 다짐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항복 선언이 아니라, 설득보다는 인정에 더 큰 무게를 두겠다는 나만의 결단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상담을 공부하며 깨달은 엄연한 사실 하나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그저 이해하는 척을 할 뿐, 타인의 깊은 내면까지 끝내 가닿지 못한다.


칼 로저스가 건넨 사랑의 실마리

MBTI 전문강사 교육을 받던 시절, 부부 싸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기혼 여성들이 털어놓는 서운함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인 문장이 깔려 있었다. 바로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느냐”는 외침이었다. 그때 내 마음을 치고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변화한다.”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경험이야말로 변화와 성장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억지로 이해하려 애쓸수록 나는 지쳐갔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도, 가정에서 아내를 대할 때도 나는 이 원칙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무관심과 인정 사이의 미묘한 경계

물론 ‘인정’은 오해받기 쉬운 말이다. 자칫하면 상대의 말에 귀를 닫는 무관심이나 갈등을 회피하려는 비겁함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세심하게 마음을 썼다. 아내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고 있음을 몸짓으로 보여주었고, 그녀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있음을 분명한 언어로 표현했다.

그 약속 덕분인지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크게 다툰 적이 없다. 아내는 가끔 “당신과는 도무지 싸움이 안 된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나의 태도가 감정을 회피하는 성인군자처럼 느껴져 답답하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닐 테다. 어쩌면 나는 ‘인정’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안전한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안의 신념은 확고했다.


다른 속도로, 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40년 가깝게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며 산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아내는 우리가 비슷한 성격이라 믿고 결혼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속았다”며 웃곤 한다. 나는 우리가 꽤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기질과 성격은 달랐지만, 삶을 바라보는 방향만큼은 같았기 때문이다. 다르기에 서로의 빈틈을 보완할 수 있고, 같은 방향을 보기에 나란히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내는 종종 우리가 젊었을 때 만났다면 참 많이 싸웠을 거라고 말한다. 마흔이 넘어 만났기에 서로를 품을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가 평온한 진짜 이유는 서로를 낱낱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기꺼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걷더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의 결혼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였다. 오늘도 싸움이 되지 않는 나와 기꺼이 살아주는 아내에게 조용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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