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은 우리 10: 우리에서 부모로, 다시 시작되는 성장판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는 자연스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라는 선물이 찾아온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키우자고 약속했다. 그것은 어떤 의무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결정에 가까웠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나는 아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은사님들을 함께 찾아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육의 정의를 몸소 보여주셨던 중학교 은사님, 시골에서 올라와 방황하던 내게 공감의 힘을 가르쳐 주셨던 고등학교 은사님, 그리고 삶의 벼랑 끝에서 나를 지켜봐 주신 스님. 세 분의 말씀은 신기하게도 결이 같았다. 늦은 결혼인 만큼 더 단단하게 살라는 격려와 함께 꼭 아이를 키워보라는 당부였다. 특히 스님께서는 “서로에게 덕 보려 하지 말아라. 부부에게도,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가 관계의 중심을 잡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인공수정을 고민했다. 무엇보다 아내의 몸과 마음이 견뎌야 할 과정이기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한 번의 시도가 아쉬운 결과로 끝났을 때, 아내는 잠시 몸을 추스른 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자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그 말에는 소리 없는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느슨해진 그 찰나에 선물 같은 생명이 찾아왔다. 긴 방황과 고독의 시간을 지나온 마흔둘의 나이에, 나는 비로소 ‘아빠’라는 낯설고도 벅찬 이름을 얻었다. 기적은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붙잡으려 할 때보다,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빈자리에 찾아온다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하실 분은 어머니였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참고 견디는 것이 부모의 숙명이라 믿으셨던 분. 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그땐 돈 버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참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며, 너희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당부를 유언처럼 남기셨다.
하지만 삶은 가혹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불과 한 달 전, 아내의 생일날 어머니는 끝내 첫 손주를 안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함께 웃고, 함께 밥 먹으며 자라 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으나 그 장면은 영영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느낀 기쁨만큼이나 책임감의 무게는 무거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라는 이름으로만 살 수 없음을, ‘우리’를 넘어 누군가의 세계가 되어주는 ‘부모’가 되었음을 뼈아프게 실감했다.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부모가 다시 자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이제 내게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강렬한 예감으로 다가온다. 나의 교육관이나 가치관을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삶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다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를 찾는 여정’이 고독한 내면의 탐구였다면, ‘나를 품은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이 장을 덮고 새로운 문을 열려한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더 깊게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려 한다.
내 삶의 다음 카테고리는 '함께 크는 매일'이다. 가르치는 아빠가 아닌, 함께 배우는 아빠가 되어가는 나의 첫 번째 육아 일기가 이제 곧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