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크는 매일 01: 속도보다 중요한 아이를 기다려주는 나의 시간
여름방학의 일주일은 짧은 꿈같았으나, 이번 겨울방학은 두 달 보름이라는 거대한 바다처럼 우리 앞에 놓였다.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의 긴 방학은 설렘보다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장인어른을 돌보는 아내의 어깨 위로 아이의 시간까지 얹어줄 수는 없었다.
학교 사정 상 이번 겨울방학에는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없었기에, 아니 있었더라도, 조금은 모험적인 길을 택하기로 했다.
방학 한 달 전부터 ‘도서관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나의 직장 근처 도서관은 아이에게 낯설고 고요한 섬이었다.
"아빠 없이 혼자 어떻게 있어?"라며 흔들리던 여덟 살 아이의 눈동자에 나는 구체적인 이정표를 그려주었다.
“오전에만 이곳에서 네 세상을 구경하렴. 점심은 아빠랑 마주 앉아 먹고, 집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야.”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마침내 세 시간. 아이는 낯선 공기 속에 스스로를 채워갔다.
방학 첫날, 출근길에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점심시간에 찾아간 나를 보며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벌써 세 시간이야? 난 삼십 분밖에 안 지난 줄 알았어.”
몰입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아이의 표정을 보며, 내 마음속 불안의 파도도 비로소 잦아들었다.
방학의 끝에는 ‘한자능력검정시험 7급’이라는 작은 산 하나를 두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태권도와 미술학원만을 다녔기에, 매일 저녁 딱 네 글자만 열 번씩 적어 내려갔다.
시험을 앞둔 일주일은 지난 기출문제들을 풀어보는 것으로 준비를 했다.
물론 방학중에 한자만 한 것은 아니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대신, EBS 교재를 이용해서 국어 어휘와 수해력을 번갈아 가면서 매일 20분가량 스스로 풀어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거창한 실력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매일의 힘'을 아이의 몸에 새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두 달 동안 150개의 글자가 아이의 손끝을 거쳐 갔다.
방학의 끝자락에 시험을 치르고, 고사장을 나오는 아이의 표정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아이는 합격증보다 더 귀한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기 신뢰라는 근육을 얻어 돌아왔다.
돌아보면 이 방학은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늦깎이 아빠로서 나 역시 매 순간 확신이 없어 아이에게 묻고 또 물었다.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어쩌면 아이보다 내게 더 혹독한 훈련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앞에서 끌고 가는 견인차가 아니라, 아이의 보폭에 맞춰 나란히 걷는 동반자여야 함을 이제야 배운다.
만화책만 읽어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책상 앞에 앉아 고요를 견디는 힘이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끝까지 완수해 보는 감각이었으니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가난을 넘어서는 것이 유일한 정의였던 시대, 부모님은 늘 바빴고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시절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분들의 뒷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 나는 이제 다른 길을 가보려 한다. 성취보다 아이의 행복을, 결과보다 아이의 마음을 중심에 두는 부모의 길을 말이다.
방학은 끝났지만, 나의 진짜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아이를 믿어주는 일은 사실 내 안의 조급함과 욕심을 걷어내는 비움의 작업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내 안의 미성숙함을 마주하며 내가 더 크게 자라고 있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사랑은 '능동적인 관심과 책임'이다.
관심은 아이를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인내이며, 책임은 아이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제 짐을 스스로 질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 견뎌주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함께 자란다. 매일 조금씩, 아이 덕분에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한다.
마흔넷에 만난 이 작고 경이로운 존재가 처음 내 품에 안겼던 그날, 그 뜨거웠던 첫 만남의 기억부터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