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키 Jan 07. 2018

우메오의 긴 밤은 별과 오로라가 수 놓는다.

사람이 비는 자리, 자연이 채우는 자리

  이곳 우메오에 몇 달을 지내보니 이곳이 대도시에 비해 심심하고 조용하고 밋밋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시골의 묘미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배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비는 자리를 자연이 메워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비는 자리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서 인구 천만의 '나라' 스웨덴에 왔고 다시 12만 명이 사는 우메오로 들어오니 정말 사람에 치일 일이 없어졌다. 물리적으로만 본다면 여태껏 버스에 서서 탄 적이 단 한번뿐이고 (쇼핑센터 직원들의 퇴근시간이랑 겹쳐버렸던 적이었다), 심리적으로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이곳 분위기에서 내 삶과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인지.. 오래 떠들고 있으면 어느새 지쳐있는 날 발견하기도 한다.
  어쩌면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이 삶이 처음엔 적응도 안 되고 쉬이 침체되기도 했지만 5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은 내 마음을 돌아보고 머릿속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SNS의 영상과 정보.. 들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가 올 즈음 내 관심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현재 배우는 과목들과 관련된 fun facts 들도 소비하며 이걸 내 관심사와 어떻게 연결 지으면 좋을까 공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비록 대단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어도 괜찮다 싶은 것들은 조금씩 메모하고 작동 원리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곤 했다. (지금 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작했는데 교수님 조언으로 일이 커질 것 같아서 큰일이다..)
  머릿속만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는 것만 같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다시 반문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내가 그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덕분에 최근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드디어 사용설명서를 손에 넣은 듯한 느낌이다. 물론 어릴 적 멋모르고 집어 들었던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책보다 두껍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해석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아직까지 알아낸 것은 나는 '정리는 싫어하지만 청소는 제법 하는 인간'이라는 것, 요리에 제법 소질이 있다는 것, 게을러지면 한없이 게을러져서 외부에서 동기부여할 것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것 정도이다. 
  아직은 채운 것보다 빈자리가 많지만 이 석사 생활이 끝날 즈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더 부지런히 채우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연이 채우는 자리

  사람이 없는 만큼 그 자리는 자연이 채우는 것 같다. '아무것도 없어'라고 쉽게 이야기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편협한 생각이었다.

도서관 앞 벤치의 마시멜로들

  우메오를 가장 열심히 채우고 있는 자연은 뭐니 뭐니 해도 눈이 아닐까 싶다. 점점 볼 X 자동차가 대형 작업차들을 잘 만드는 데는 다 눈 치우다가 생긴 노하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눈들 덕에 멋진 신발이 없다면 길거리에서 강제 댄스타임을 갖게 된다. 우메오에 오실 예정이신 분들은 꼭 안 미끄러질만한 신발을 장만하고 오시길.. 물론 미끄럼 방지를 위해 거친 자갈을 뿌리긴 하지만, 눈이 많이 올 때는 그 자갈들 마저 눈에 파묻히고, 휴일 동안은 자갈 뿌리는 사람들도 쉰다. 눈들이 질척거리지 않아서 발이 엄청 시리진 않지만 미끄러운 건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이곳이다.
  눈이 반쯤은 반갑고 반쯤은 성가신 손님이라면 언제나 설레게 하는 손님들도 있다. 바로 맑은 하늘 속 빛나는 별들과 때때로 찾아와주는 오로라다.

꽁꽁 언 니달라 호수(Nydalasjön)에 뜬 별들. (사진: 김송현)

눈 내리는 날들이 너무 많아 맑은 하늘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만, 구름이 없는 날은 별구경 가기 좋다. 기숙사 방에서 내다보아도 좋지만, 도시광을 피해 조금만 나오면 더욱 선명한 별들이 맞아준다. 미세먼지 걱정이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작은 별까지 제각기 빛을 뽐내느라 열심이다. 별을 가장 보기 좋은 곳은 니달라 호수인데, 인공 불빛이 거의 없고 호수가 넓어 꼭 대표 전망대가 아니어도 많은 곳에서 별을 볼 수 있어 사람을 피해 감상하기도 좋다.
  사실 이곳 니달라는 별구경하는 명소가 아니라 오로라를 보는 명소이다. 이동네 사람이라면 거의 다 있는 오로라 알림 어플에서 kp 3 이상 뜨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니달라로 모여든다.

완벽했던 2017 크리스마스이브 (사진: 김송현)

위의 오로라 사진도 kp 3 정도의 제법 약한 축에 드는 오로라 지수에서 찍은 것이다. kp 5 이상의 강한 오로라 때는 바로 위 하늘에서 빛의 커튼이 춤추는 것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강한 오로라조차 폰카로는 어림없다.. 거의 실지렁이 정도일 뿐이니.. 혹시 멋진 오로라 사진을 원한다면 괜찮은 카메라는 필수다. (덕분에 우메오생활 5개월 동안 내 손으로는 사진 한 장 못 건지고 크리스마스 휴가차 온 동생의 카메라로만 찍을 수 있었다.)

  대도시의 생활에 익숙해 과연 저런 곳에서도 살 수 있을까 싶지만, 나름대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즐기고 있다. 특히 복잡한 생활에 지쳐 온전히 원하는 것 한 가지만 하고 싶다면 우메오는 더욱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