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데의 바이올린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무라카미하루키 <위스키 성지여행>
어느 순간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어색해졌다. 나이가 들며 점점 멋쩍기도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T성향(MBTI)을 들먹이며 감성을 숨기게 된다. 유행하는 줄임말을 빌려 얼버무리는 게 훨씬 멋진 사람인 그런 관계 속에 내가 있기도 하다.
요즘 이런 내 일상과는 반대되는 틈이 조금씩 열리는 기분이 든다. 아마 최근 “감정표현 극대화의 바이올린”이 내 인생에 들어온 게 화근인 것 같다. 얼마 전 오케스트라에 의해 듣게 된 교향곡 <세헤라자데>에 등장하는 왕의 존재가 묘하게 와닿았다. 나의 세계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주요 서사를 이루는 ‘천 하루’ 동안의 재밌는 이야기나 이 음악이 가진 독창적 선율의 미적측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감성이란 건 의도해도 쉽지 않다.
다만 이 완고한 왕이 겪게 되는 감정 변화에 관심이 쏠렸다. 지속적으로 세뇌하는 듯한 세헤라자데의 가녀린 떨림(바이올린)에 웅장한 관악기는 결국 정체성을 포기한 것 같았다. 왕은 아마 스스로의 감정변화를 체감하며 의식상태로 되돌리는 노력도 끊임없이 동반했겠지만 결국은 무의식적인 감정의 이동(끌림)을 택하고 만 것 같다. 감정의 방향은 아무리 뛰어난 멘털을 가진 왕이라도 바꾸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마지막엔 어떤 의미를 가진 주도권도 삶의 목적인 복수도 모두 상실하게 되지만, 우리 삶이 다 그렇듯 내려놓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지 않은가. 틀림없는 어떤 만족감과 편안함을 보상받게 됐으리라.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건 썩 괜찮은 선택이지 않냐는 생각도 든다.
어느덧 인생의 중반기를 맞이한 나에겐 서글픈 내려놓음들이 많았다. 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싸와왔던 긴 시간과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버리면 나는 더 이상의 내가 아닌 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일상에서 감정표현들은 곧 금기어 같은 존재가 됐고 오히려 묻어두는 게 훨씬 유리했다.
내게 있어 제2의 인생이란 포기를 통해 순응하는 길을 찾아나가는-사실 아직도 순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삶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과 아직 소멸되지 않은 감각에 귀를 기울이며 이 소우주에 어느 정도 집중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이루려 했던 학자로서의 성공보다 훨씬 솔직한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세헤라자데의 바이올린처럼 지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미세하고 약한 변화를 즐겨보기로 했다. 이미 내 주변엔 다양한 형태의 세헤라자데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내 마음 한편에 작은 감정 하나라도 남겼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유의미하다.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언제나 부분의 합은 총체적인 것보다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