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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 Apr 20. 2019

19세기의 성곽도시, 시그나기

코카서스 10 - 성곽도시 시그나기, 보드베 수도원


조지아의 국경도시 텔라비에서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성곽도시 시그나기가 나오는데 가는 동안 버스 차창 밖으로 넓은 포도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와인 생산지임을 뽐내고 있었다.


시그나기(Signagi)는 텔라비에서 남동쪽으로 55km 인구 약 2,000명의 작은 마을로 18세기 성벽 안쪽에는 19세기의 오래된 마을의 모습이 남아있으며 Chizikhi, 역사박물관, Bodibe 수도원 등이 있다. (수도원의 예배시간은 매일 09:00~11:00) 화가 피로스만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피로스마니 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다.


보드베 수도원 가는 길에 보이는 시그나기 마을의 모습


숙소인 시그나기 호텔은 언덕배기에 있어 호텔 문을 나서면 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작은 마을이라 광장을 중심으로 상점이나 식당 등이 형성되어 있는데 광장도 자그마했지만, 중심의 분수대가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광장 옆에 정원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도 주문을 받으러 오는 기색이 없어 10여분을 기다렸다가 기분 나빠서 나와버렸다. 나 혼자는 소심해서 그런 행동을 절대 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때쯤 나는 5명이 한 그룹이 되어 돌아다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식당을 찾으면서 걷다 보니 마을 외곽에 다다랐고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일행의 말을 믿고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테이블이 비어있었지만, 우리가 음식을 시키고 대화를 이어갈 때 즈음 가는 날이 장날인 건지, 식당 안으로 젊은 단체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단체손님은 국적이 전부 다른 연합모임인 듯했는데, 어디서 왔냐? 우리는 어디서 왔다. 학생이냐? 등등... 우리는 그들과 어눌한 영어와 손짓, 발짓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갔고 사진도 찍었다.

음식은 분위기가 좌우한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들뜬마음으로 먹었던 음식들은 정말 맛있던 것인지, 아님 기분상 맛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같이 맛이 있었고 이후 여행하는 내내 여기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먹는데 급급해서 식당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쉬워 집에 돌아와서 구글 지도를 통해 검색은 해보았지만 워낙 작은 식당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가볼 수는 있을까??




보드베 수도원까지는 2.5km 거리가 있다.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쉬웠겠지만 식당을 찾기 위해 마을 외곽까지 걸어 나온 상황에서는 서있는 택시가 보이지 않았고 달리는 택시는 전부 사람이 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택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걸어가는 것으로 합을 모으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니노가 묻힌 자리에 세워진 보드베 수도원을 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2.5km를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가면서 땀을 흘리며 걷고 있자니 광장으로 다시 돌아가 택시를 잡아타고 가면 될 것을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기를 2시간을 걸었을까, 보드베 수도원 입구에 도착하니 대기하고 있던 택시들이 보인다. 시그나기에 있는 택시는 다 이곳에 있는 것 같다. 힘겹게 걸어왔건만 하필이면 공사 중이었다.


공사중인 보드베수도원과  보드베수도원의 외경


공사 중이라고 수도원 내부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일행들은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곳으로 뿔뿔이 헤어졌고 난 정원의 꽃들과 조망이 좋아서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일행 중 한 분은 성 니노의 무덤에서 기도와 입맞춤을 하고 왔다고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보드베 수도원 한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성곽과 성곽 사이를 2명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으로 된 돌계단은 한없이 아래로 향해 있었고,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다시 올라가야 하나', '다 내려가서 우회해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되었는데, 사람의 호기심이 뭔지... 그래도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지라 계속 내려가 봤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거의 1시간 가까이 내려온 듯한데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내려온 곳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줄을 서고 있었다. 이 곳은 '성수'가 있는 곳이었고 낮은 건물로 지어진 곳에 성수가 나오고 있어 사람들이 그 물을 본인의 몸에 끼얹고 있었다. 나는 가져간 옷이 없어 몸에 끼얹을 수는 없었으나, 손에라도 물을 끼얹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줄이 너무나 길었고 사람들이 많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곳에도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계단을 다시 올라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시그나기 시내로 가려고 요금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이 처음 부른 요금은 평균금액의 3배 정도가 높은 바가지요금이었고, 흥정하면 요금이 조금씩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의 택시기사들은 오만한 태도로 흥정을 하려 들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그 오만한 택시기사에게 택시요금을 주느니 그냥 계단을 다시 걸어 올라가기로 하였는데, 택시를 뒤로하고 첫 계단을 밟으면서 후회했다. 내가 미쳤지...

계단은 올라오면서 몇 개인지 세어보니 703개 정도 되었다.

결국 있는 땀, 없는 힘까지 모조리 써서 보드베 수도원 입구에 있던 택시와 흥정에 성공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택시의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머리에서 흘러내리던 땀들이 시원하게 마르고 있었는데 눈에 펼쳐진 초록색의 나무들과 그 안에 빨간 지붕의 멋스러움이 시그나기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19세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단의 끝엔  성수가 있다





성벽 안쪽으로 구성된 마을을 보면서 성곽을 돌기 시작했다. 성곽은 중간에 끊겨있어 다 돌 수는 없었지만, 성곽을 따라 돌면서 보이는 탁 트인 벌판과 불어오는 바람은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성곽을 돌다 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성곽 중간에 있던 식당에 들어갔다. 이 곳에 있는 두서너 개의 식당들은 숯불에 고기를 구워 연기를 피우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조지아는 와인 생산지이니 만큼 와인이 유명하다. 식당마다 하우스 와인을 만들어 팔 정도로  식당마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 곳의 하우스 와인을 시켰는데 가격까지 착한 와인은 정말 맛있었다. 텔라비에서 비싼 가격을 치르면서 먹었던 와인보다 훨씬 맛있던 이 곳의 하우스 와인은 샤실릭이랑 카차프리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성벽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바라봤다.


석양을 머금은 시그나기
시그나기 성곽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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