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기 Apr 19. 2019

백만 송이 장미, 피로스마니

코카서스 09 - 그 가난한 화가의 순정이 맘에 들어버렸다.

'백만 송이 장미' 노래 가사의 주인공인 화가 피로스마니가 태어난 시그나기는 피로스마니 박물관이 있고 그곳에 피로스마니의 그림 몇 점이 전시되어 있다.

화가 피로스마니는 고아였고 가난했으며 간판을 그리면서 생활했다. 물감 살 돈이 없이 간판을 그리고 남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던 피로스마니를 조지아의 화단에서는 천시하고 소외시켰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지하 화실에서 외롭게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던 피로스마니는 안타깝게도 그가 사망한 후에야 조지아에서 인정받고 유명해졌다.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은  라트비아의 가요 '마라가 준 인생(Davaja Marina)'이란 곡을 러시아어로 번안한 곡이다. 소련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원곡인 '마라가 준 인생'은 1981년 라트비아(당시 소련 치하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 출전한 아이야 쿠쿨레, 리가 크레이츠베르가가 불러 우승했다. 가사 내용은 '백만 송이 장미'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당시 소련 치하에 있던 라트비아의 역사적 아픔과 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련 시절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곡 '백만 송이 장미'의 가사는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작사한 것으로,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에 사랑에 빠졌던 일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출처 : https://namu.wiki/w/백만송이%20장미)  



'백만 송이 장미'  

                                              (러시아어 버전 가사 내용)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도 팔아

그 돈으로 완전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아침에 그대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 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백만 송이 가사의 모티브가 된 일화는 이러했다.

화가 피로스마니는 프랑스 출신의 배우 마그레타를 사랑했지만, 아름답고 팬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던 그녀는 가난한 화가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생일에 맞춰 자신의 집, 그림, 피까지 모두 팔아 장미를 사들였고 그녀의 집 앞 골목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아침에 창문을 열고 골목 가득한 꽃들은 본 마그레타는 그의 선물에 감동했고 피로스마니와의 사랑을 잠시 받아들였지만.. 이내 떠나고 말았다.  


물론, 그 일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많다. '화가와 배우가 연인으로 보이지만, 그 여인이 장미를 좋아했다는 내용은 없다',  '작품 전시 때 여배우와 비슷한 여자가 포착되었다.' 또는 '여배우에 대한 실존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등 일화에 대해 '사실이다', '아니다'를 두고 여러 가지 설들이 많지만, 조지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가사의 내용이 '사실인가, 거짓인가' 보다는 그 정도의 순정을 가진 화가가 조지아에 있었고 그 화가의 그림이 소중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그나기뿐 아니라 조지아의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방문하면 어김없이 피로스마니의 그림이 있고, 기념엽서  또는 기념품에도 피로스마니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느꼈던 조지아 사람들은 분명히 피로스마니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어 했다.  





시그나기 시내는 자그마해서 피로스마니 박물관은 시내의 랜드마크인 분수대를 끼고돌면 나오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나는 그림을 몰라서 미술관은 가지 않지만, 피로스마니, 피로스마니 하던 말로만 듣던 그의 그림을 보려고 미술관을 찾았다. 

그림은 여전히 어렵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도저히 모르겠고 다른 그림들도 그 속에 품은 뜻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본 나는 그림이 복잡하지도 않았고 몇 가지 되지 않는 색감으로 단출하지만 깔끔하게 그려진 잘 그린 아이들의 작품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편하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내 생각이지만...

미술관 한 바퀴를 휘휘 돌아 나오는데 눈에 방명록이 보인다. 이런 곳에는 꼭 이름 석자를 남기고 나오는 못된 버릇이 발동하여 꼬부랑글씨들이 모여있는 한 페이지에 이름 석자 남기고 나왔다.




피로스만의 그림은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 조지아 트빌리시 국립 미술관에는 피로스만의 그림들을 160점 전시하고 있다는데 내가 160점 전부를 다 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중에서 피로스만이 그린 마그레타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본 마그레타도 인터넷에서 보던 마그레타와 별반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난 그림에 관심이 없나 보다. 남들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데 난 휙휙 지나가다가 마그레타를 보면서 '와아~ 마그레타다!'라는 말과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바로 돌아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 '백만 송이의 장미'라는 러시아어 버전의 노래를 들으면서 피로스마니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 가난한 화가의 순정이 맘에 들어버렸나 보다...


 피로스마니의 모습
영원한  연인 '마그레타'




매거진의 이전글 조지아에서 가슴 뛰는 첫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