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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 Feb 26. 2020

태양신의 자리, 파미르를 보면서...

카라코람 하이웨이 1,250km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양신의 자리, 파미르 고원을 보면 가다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서 중국 신장의 카슈카르까지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오늘 도착해야 하는 카슈카르에서 그 대장정의 끝이 난다. 1,250Km가 드디어 오늘 끝나는 것이다.

카슈카르로 가는 동안은 파미르 산맥을 보면서 이동한다. 쿤자랍 패스를 통과하기 전부터 계속 3,000미터 이상을 다니고 있으니 고산증에 약한 나는 고산증 약을 꼬박꼬박 먹고 있다.

힘든 코스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탁월한 걸 보면 멋진 풍경도 고생을 해야 볼 수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페르시아어 '태양신의 자리(Pa-imihr)'가 어원인 파미르 고원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데  히말라야 산맥, 카라코람 산맥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맥들이 파미르 노트로부터 뻗어나간다.

어제 쿤자랍패스를 통해 중국 타슈쿠얼간에 도착해서 파키스탄 여행 10여 일 동안 보지도 못했던 알코올들을 만났다. 맥주, 고량주, 소주 등... 반가운 마음에 너무 즐거웠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들이킨 맥주의 취기 때문에 아침부터 비몽사몽간에 버스에 올라 카슈 카르로 향한다. 4,000m가 넘는다고 하니 여행하면서 먹다 남은 고산증 약을 꿀꺽 삼켜본다. 아니나 다를까, 차는 신나게 달리고 있고 멋진 풍경들이 내 눈에 보이기는 하는데 고산증과 취기가 뒤섞여 컨디션이 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타흐만 전망대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설산의 아버지’ 혹은 ‘빙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만년설의 무스타가차산 (Muztagata. 해발 7546M)의 뷰포인트가 나온다. 뷰포인트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뷰포인트의 정의는 발품을 팔고 체력이 소모되어야만 도달하는 곳이다. 여느 때 같으면 힘들어도 가봤을 테지만, 풍경사진 몇 개만으로 만족하는 거 보면 컨디션이 영 아닌가 보다. 흰 눈이 쌓인 산의 뒤가 파미르 고원이라는 걸 옆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감흥이 없다.


무스타가차산 뷰포인트 밑에서




무스타가차산의 뷰포인트를 나와서 점심 장소로 찜해두었던 칼라쿨 호수에 도착했지만, 점심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점심을 준비해왔다면 멋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 간단히 먹으면 그만이지만, 나처럼 미쳐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곳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아직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곳에 왔으니 칼라쿨 호수가 어찌 생겼는지는 봐야겠기에 도로를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본다.

하얀 설산으로 향하는 도로의 끝은 보이지 않고 설산은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설산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비췻빛의 호수와 설산과 구름과 파란 하늘이  어우려져 눈호강이 따로 없다. 그 한편에 말들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타면 말들이 고생할까 봐 나는 호숫가 주변을 그냥 걸었다. 아직은 3,900m로 고지대이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면서 살살 걸으니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게 아주 기분이 좋다.

야외 가판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든다.

야크 샤슬릭 장수였다. 두서너 명의 샤슬릭 장수들이 연기를 피워대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보기 좋게 넘어가는 나였다. 길거리 음식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샤슬릭 장수에게로 다가가 야크샤슬릭 한 꼬치 집어 들고는 한입 베어 물었다. 육즙이 입안에 쫘악 흘러나오면서 기분도 한결 좋아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누가 맛있게 먹고 있으면 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은가 보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판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샤슬릭은 구워내기 무섭게 사람들의 입속으로 직행했다.   


칼라쿨(Kala Kule Lake) 호수는 유성으로 인해 생긴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약 2,500만 년 전 또는 적어도 500만 년 전에 유성과의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 인해 패인 직경 52km의 웅덩이에 호수에서 보이는 무스타가차산의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고 물이 고여 지금의 호수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해발 3,900m에 검은빛을 띠고 있으며, 수심이 동쪽의 호수는 19m, 서쪽의 호수는 221~230m에 이른다.



칼라쿨(Kala Kule Lake) 호수



칼라쿨 호수에서 30여분을 달리면  백사산(白沙山)과 백사호(白沙湖)가 나온다. 바람에 날아온 하얀 모래가 산을 덮어서 백사산이란 이름이 지어졌고 현재의 모양을 만들어냈다. 사막의 모래산도 아니고 높은 산에서 보이는 황토색이나 회색도 아니었다. 하얀 순백 산은 실제로 보았을 때 그 모습이 더 신비롭다. 하지만 나무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산이었다. 백사호 주변은 뛰어놀기 좋을 정도로 넓었으며 바람의 세기도 딱  놀기 좋은 만큼 불어댔다.

목에 두른 스카프를 펼쳐보면서 바람맞는 가녀린 역할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댔으나, 정작 내 눈에 보이는 사진은 원판 불변이라... 전부 삭제해버렸다.


이렇게 아침부터 왼쪽의 파미르 고원과 오른쪽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두고 계속 이동해왔다.

즉, 이곳은 인도판(印度板)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부딪치는 곳으로 그 에너지에 의해 히말라야 산맥, 힌두쿠시 산맥, 카라코람 산맥, 곤륜산맥 등과 티베트 고원, 파미르 고원 같은 것을 만들었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지진 등이 지질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때쯤 카슈가르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을 하였으나 검문 통과 등이 수월하여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다. 이로서 카라코람 하이웨이 1,250km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백사산 & 백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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