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직장인이 되고 싶다. 쉰살이나 된 지금도...
쉰살이 되어서 신입사원이 되었다. 합격통지만 받았을 뿐이니까 예비 신입사원이다.
그 합격통지를 받기 위해 쓴 이력서는 몇십 군데가 넘지만, 정작 면접이 진행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적다. 쉰살이라는 나이에 예전에 하던 직종에서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환을 했기 때문에 전 직장에서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지금 직종에서는 신입이기 때문에 현재 나는 쉰살의 무경력자다.
쉰살의 무경력자가 합격통지를 받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
어쨌든 난 합격통지를 받았다.
정식 출근도 나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소파에 누워서 첫 출근 때 무엇을 입을 것인지 생각해본다.
첫 출근이니 점잖게 보여야 하는 색으로 쭉 나열해본다.
바지, 셔츠, 조끼, 양말, 구두까지 하나씩 하나씩 생각하다 보니 조합이 맞춰져 간다.
그럼 이제 코트랑 가방만 보면 되는데...
장롱을 열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눈에서 레이저를 밝히면서 쏘아보았다. 갑자기 한숨만 나왔다.
그동안 오피스를 나갈 일이 없었으니 편한 것이 좋다고 잠바와 패딩만 사 모았던 터라 장롱 안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입을 수 있는 각종 잠바와 경량 패딩부터 롱 패팅, 히말라야 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등산용 헤비 잠바까지 아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방은 더 기가 찼다. 편하다고 백팩만 메고 다닌 지 5년이 넘었다. 가방들은 5년 동안 건드려본 적이 없으니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고, 빛이 바래 얼룩덜룩하다. 하물며 헤져서 불쌍한 넘들도 있었다.
백팩이야 메고 갈 수는 있다지만 잠바떼기를 걸치고 갈 수야 없으니 폭풍 인터넷 쇼핑에 빠져본다.
예전 같으면 이것이 이쁠까? 저것이 이쁠까? 하면서 고민했겠지만, 쉰이란 나이는 어떤 것이 가성비가 더 좋을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또 어떤 것이 무료배송이냐에 따라 쇼핑 목록도 결정된다.
어쨌든 하루 종일 폭풍 쇼핑을 하다 보니 맘에 드는 옷은 찾았다지만, 쪼그리고 앉아 작은 핸드폰 화면에 작은 글씨들과 씨름하다 보니 눈이 침침해지만 아파왔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자세 때문에 목과 허리도 아팠다. 총체적 난국이다.
쇼핑을 마무리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흘 후면 내가 근무해야 하는 직장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직속 담당과장이 서울로 발령이 난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 도움이 되는 얘기들을 들을 심산으로 시간을 내서 찾아갔다. 담당과장은 내가 찾아와 준 것이 반가운지 상세히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체적인 윤곽만이라도 알아두겠다는 심산으로 계속 듣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방대한 양으로 들어오는 내용들은 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섞여가고 있었다.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면 오늘 들은 얘기들이 생각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듣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을 것이다.
예전에는 직장인이었다지만 퇴직한 지 6년이 넘었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환한 것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눈도 침침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든 데다 전산능력도 요즘 2-30대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더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게 외모부터 욕심을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오늘 구매한 옷이 출근 전날까지 도착할 수 있기만을 기대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배가 고프다. 내일 아침에 채용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금식 중이었다.
직장인이 되려면 채용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배가 고파도 묵묵히 참고 있는 것이다.
난 이렇게도 직장인이 되고 싶은가 보다. 싄살이나 된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