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에 대하여.
아빠는 주변 지인의 결혼식에 가는걸 '잔치 간다'라고 말한다. 사투리 아닌 사투리 느낌. 아마 경상도 사람들의 표현인 듯하다. 그런데 그 잔치 중에서도 딸이 결혼하는걸 '딸 치운다'라고 자주 표현했다. 딸을 결혼시킨다는 의미인데, (찾아보니 아들 치운다는 말도 많이 한다고 한다.) 내가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딸치운다는 말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결혼한 후에 언젠가 아빠랑 엄마랑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아빠가 잔치 간다고 하길래, 무슨 잔치 가냐고 물었고, 아빠는 무심코 딸 치우는 거 보러 간다고 말했다.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솟구쳐서
"딸 치운다 딸 치운다 소리 좀 하지 마라. 치우긴 뭘 치우노? 어디로 치우노? 아빠는 그럼 내를 치았나(치웠냐)?!!" 하면서 앙칼지게 소리쳤다. 당연히 아빠한테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잠깐 움찔하시더니, "알았다 인제 치웠다 안하꾸마" 라고 하셨다.
소리칠 때 내 말투는 싸가지가 매우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화를 내지 않은 이유는 내 버릇없는 말대꾸에 스민 서운함, 서러움을 아마도 아빠도 읽었기 때문이리라.
결혼이 내 삶에 실제가 되면서 나를 자꾸 이제 더 이상 내 엄마 아빠의 딸이라는 나의 원 가정에서 (결혼을 하면 나의 새로운 가정으로 독립되어야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맥락으로) 나를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자꾸만 남편의 가족 소속으로만 나를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관계를 표현하는 수많은 말, 분위기, 관계, 습관 등이 나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매우 불편하며 가끔은 화가 난다.
무엇보다 가장 거슬리고 힘든건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부모가 나를 자꾸만 다른 집 식구로 취급하는 표현을 가장 많이 한다는 거다. 결혼을 할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는 나를 다른 집 사람으로 취급하며 슬퍼하고 서운해했다. 거듭되는 엄마의 표현에 나는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잘라내 냐고. 나는 여전히 엄마 아빠의 딸이라고. 그런 식으로 서운해하지 말라고.
엄마 아빠의 묘한 태도는 남편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다른 집으로 보낸 딸로 생각하는 만큼 사위는 감히 집안일을 시키는걸 남사스러워한다. 그래서 친정집에서 신랑은 주방일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우리 아빠와 엄마가 학을 떼고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를 불편하게 하기 싫으니 그냥 내가 한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살림을 훨씬 많이 하고 나보다 훨씬 잘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퇴근길에 생각했다.다음부턴 우리 집에서도 남편이 주방일을 하게 해야겠다고. 이 미묘한 차이를, 남자와 여자를 대하는 은근한 차이를 없애두어야 특히 내 남동생의 아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내 동생의 아내에게 우리는 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의 살림을 당연히 맡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을 하나요?'라는 책을 읽고 있다. 결혼을 마주하며 여자들이 느끼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이 책을 읽다가 아빠한테 소리 지르던 저 날이 생각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생각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서 글로 남겨본다.
도서 정보 : http://www.yes24.com/Product/Goods/70364778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읽어보자.
남자라면 더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