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하여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기 까지

by 하나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되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돼요."


약속시간이 좀 남아서, 같이 들어간 카페에서 어쩌다 보니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경력단절, 사회인으로서의 나.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내'문제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건 '우리'의 문제인데 자신을 임신, 출산, 육아에 있어서 타인화 시키는 나에게 서운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나는 남편이 나와 같은 수준으로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임신하는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모두 내가 겪어야 할 내 문제임이 자명하지 않은가.

나 대신 열 달 동안 아기를 품을 수도 없을 것이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닥쳐올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들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 후에도 아기를 돌보는 육아 역시 내 몫일 거라는 막연한 부담감과 불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은 점점 두려움, 분노, 억울함 등으로 변했다. 나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나의 환경을 잃기 싫다. 돈을 버는 것만이 유의미한 일은 아닐 테지만 무언가 경제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되었을 때. 육아를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의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예상이 안됐다.


더 큰 불편함은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생길 원망과 분노를 나의 아이와 내 남편에게 쏟아낼까 봐 걱정됐다. 더 정확히는 경제적 사회적 결핍 상태를 건강하게 소화해 낼 자신이 없었고 내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환경을 남편이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할 때도 내가 가장 어이없는 것은,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를 낳고 싶은 내 마음이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 아이를 낳고 지금과 많이 달라질 나 사이의 이 간극. 이게 두렵고 짜증 났다


- 여기까지.

위의 글을 쓴 건 2018년 말 ~ 2019년 초겨울 즈음이다. (지금은 2019년 초여름)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내가 보관해 뒀던 글들을 보고 있는데, 이 글은 정말 날이 많이 서 있구나. 실제로 저 때의 나는 많이 날이 서있었던 게 맞았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문제를 고민할 때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계산하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가 잃어야만 하는 것들에 혼자 억울해하고 분에 못 이겨 씩씩대고 슬퍼하고 우울해했다.


위에 써둔 글을 지우지 않고, 지금 다시 글을 추가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저때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저때의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건 내가 '일'을 '회사에서 하는' 일로 정의했고 그 이외의 것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형태로 일을 하는 것의 영속성과 확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만을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 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조건인지 돌아보게 됐다.


많은 생각을 거쳐 얻은 결론이지만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회사라는 조직에 속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은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을 쓸 때부터 나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결심한 이상 나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할 것이고 태어난 아기를 키우기 위한 육아의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임신, 출산을 할 경우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일, 집중, 몰입을 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육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월급만큼의 돈을 쓰고 다른 타인을 종일 고용하거나 다른 누군가의 수고를 빌지 않으면 안 됐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가져오는 시간적, 물리적, 육체적 제약은 임신 이전의 상태와 동일한 수준으로 일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라는 조직에 속했을 때만 돈을 벌 수 있는 형태의 일을 하는 것의 확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젊을 때 다른 형태의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낳기 위해 내가 잃어야 할 것들이 '회사'에 소속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만드는' 커리어와 돈이라면 그냥 잃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회사에서 일에 대해 나름의 생각의 방향성이 결정되니 임신과 출산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선택과 삶의 모양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우연히 예전에 쓰다가 저장해 뒀던 이 글을 보니 새삼스럽다.

내가 만든 틀에 갇혀서 내가 저렇게나 고통받고 있었구나 하고 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자, 이 글을 또 6개월 뒤, 아니면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내가 보게 되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는 그때의 글을 또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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