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태의 나라도 사랑하기

by 하나

추석 연휴의 대부분을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집안에서 티비를 보고, 집안을 뒹굴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연휴 이외의 나의 일상이랑 '크게' 다른건 없었다. 하지만 소소하게 내가 지켜왔던 몇가지 것들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집에 내려갔다는 해방감?) 예를들어, 하루에 20분 남짓 운동하기. 음식을 가려먹기. 하루에 1시간 20~ 30분 정도 QT하기. 자기전에 꼭 일기 쓰기. 뭐 이런것들.


연휴와 고향을 핑계삼아 스스로를 방치하고 나니 예전으로 돌이키기가 꽤 힘들었다. 운동을 하지 못하니 당연히 몸이 둔해지고, 몸에 군살이 올라오는게 느껴지니 불편한 기분과 게으름 피운 나에 대한 한심한 마음이 일어났다. 스스로의 몸매를 미워하고, 나의 몸무게를 미워하고 다이어트를 키워드로 이런저런 글을 검색해 보면서 게으르게 지낸 스스로를 한심해 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에게 매우 부정적인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탄하고 자괴감에 휩싸이고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우울감에 구질거리는 바보같은 우울테크를 타버렸다.


하루를 우울함으로 날려버리고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문득 (정말 섬광처럼 갑자기)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이 날씬해지면 나는 그때의 나를 사랑하고 좋아해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아니'라는 대답이 바로 나왔고.


그냥 48kg가 아닌 나. 운동을 하지 않은 나. 하루종일 침대위에서 잠을 자버린 나. 얼굴이 변해 버린 나. 그냥 지금의 나. 어떤 상태의 나라도, 오늘 하루를 우울함에 날려버린 나라도, 그냥 어떤 상태의 나일지라도 나는 나를 사랑해 주자. 라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정리되지 않고 울렁이던 생각들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여름,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을 정리하고 쉬기로 결정했다. 내가 너무 많이 소모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바쁜일상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여러가지 내 감정과 나의 모습들이 흙탕물 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언제 행복하고 언제 불행한지, 나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생각치 못했던 내 모습과 내 감정들, 살면서 단 한번도 면밀하게 바라본적 없었던 나의 마음과 감정들을 마주하는게 너무 낯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나를 미워하고, 나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걸 바꾸려고 해도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에 익숙한 내가 당황스러웠다.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나 자신을 인지하고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봤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자동적으로 자기비하에 빠지는 나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어서 절망스러웠다.


지독히도 스스로가 아껴지지 않아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나 때문에 꽤 마음고생 하고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저 생각은 나에게는 꽤나 무겁고 힘들었다. 내가 무슨일을 하든, 나를 응원하지 않는 내 스스로에게 얼마나 힘이 들고,나를 인정할 줄 모르는 내가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럽던지...


'나를 대적하는 모든 것과 싸우세요'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나를 하찮게 만드는, 나를 쓸모없다고 평가하는, 모든것과 맞서 싸우라는 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나의 경우에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나를 공격하고, 나를 무시하는 가장 큰 요인이 '나'라는게 어려웠다. 도무지 어떻게 해도 내가 아껴지지 않아서 힘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이야기를 스스로에게는 수시로 내뱉고 사는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내가 너무 힘들고 아파서 고생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상태의 나라도 사랑하자' 라는 문장이 떠오르면서 꽤 진득하게 나를 괴롭혔던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정돈되면서 가라앉았다. 나를 무시하지말자. 나를 무가치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를 아껴주자. 비록 내가 만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도 그냥, 그런 나를 그냥 받아들여주자.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


너무 상투적이고 뻔한 말인데, 뻔할 정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요즈음의 나 처럼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최근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는게 기쁘고, 기특하고 꽤 많이 좋아서 글을 써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글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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