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옛날의 나.

by 하나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25944

발달 장애를 가진 음대생 한결이를 위한 모금 프로젝트 링크.

아마 한결이는 비장애인에 비해 조금 더 시간이 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가진, 친구였을 것이다.

본문 중에 “친구들이 왜 나만 놀려요?’ 라며 눈물이 맺힌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는 어머니의 코멘트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결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보였다.


저 글을 보면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지금의 내가 겪는 ‘보통이 아닌 상태’, 즉 누군가가 정의해놓은 ‘정상’에 맞지 않는 사람을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루는지, 그리고 그 깊고 은근한 폭력에 나도 피해자라는 생각과 공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상’이 아닌 사람을 향한 차별 그리고 그들이 정의한 ‘정상’이라는 상태를 끊임없이 강요받는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정서적, 심리적, 상황적인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아마 한결이가 느낀 것과는 차원이 다를 테지만, 저 이야기를 통해서 새삼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질병으로 변해버린 내 외모를 여전히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가족에게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다. 내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정리한 적이 없는데 저 링크를 통해서 느낀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향에 내려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이유는 내 외모 때문이다. 과정을 좀 설명하자면,

28살의 가을 즈음부터 나는 살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때의 나는 취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때문에 식사도 불규칙적으로 해 왔었다. 체력이 심각하게 약해졌다는 생각을 했고 속으로 조금 무서웠지만 살이 빠지는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엄마는 항상 엄마가 생각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준을 맞추기를 나와 우리 동생들에게 강요했었는데 그것은 엄마의 깊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라서.. 나도 엄마에게 무언가를 강요받고 있다는 걸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평생을 걸쳐 은근하게 반복되어온 것이라 우리 동생들도 그 부분을 매우 늦게 깨달았다.) 아마 그런 반복적인 습관들이 나에게 어떤 기준 같은걸 만들게 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나를 긍정하고 인정하는걸 매우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살이 한창 빠지던 그즈음 마침 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은 ‘이렇게 살을 다 빼오고 너무 기특하다’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씁쓸함과 두려움을 담아 “내가 어디 아파서 살이 빠지는 거면 어떻게 하려고”라고 말었했는데 엄마는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며 웃었다.


정확히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얼굴과 눈이 급격히 붓기 시작했고, 눈이 돌출되기 시작하면서 예전 얼굴과는 다른 얼굴이 되어버렸다.


몇 주를 고생하다가. 그렇게 부기가 빠지지 않은 항상 놀라고 화난듯한 기이한 얼굴의 원인이 갑상선 항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서 다시는 예전 얼굴로 돌아가기 힘들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쭈욱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서 ‘비정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그 누구도 나를 보고 ‘비정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었는데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고쳐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쓰니까 우리 가족이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것처럼 보일 수 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항상 내가 아픈 것에 대해 걱정해주고 내 건강을 위해서 신경 써주는 나를 사랑하는 내 가족이다. 다만, 그 사랑이 표현되는 방식 중에 일부분이 나를 매우 아프게 했을 뿐.)


엄마와 가족이 기억하는 ‘정상적인’ 옛날 얼굴이 아닌 나는 항상 걱정과 근심의 대상이었고, 고쳐져야 하는 사람으로 나를 대했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은 항상 ‘저렇게 돼서 이제 어떡하니. 취업,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어떡하니’라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걱정하기에 나는 부모님의 걱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걱정의 가장 밑에 깔려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무의식이 나를 힘들게 했다.


부모님과 가족의 걱정은 감사하지만 결국 그 말들을 뒤집어 해석해보면 지금의 내 모습은 사회에서 취업활동을 하기에도 어렵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비정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지점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닌데, 내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 모습을 자꾸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그런 나를 정상(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리지 않으면 너는 정상적인 사회생활, 결혼생활,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는 그 생각. 바로 그 생각들이 나에게 폭력으로 다가왔다.


서울에서의 나는 지금의 나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내 주변의 누구도 나를 얼굴이 변해버린 아픈 여자애로 취급하지 않는데,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자꾸만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싫고, 부담스럽고 원망스러웠다.


당신들의 눈에 예쁜 모습의 딸이 아니면, 당신들의 눈에 예쁜 모습의 내가 아니면 끊임없이 걱정하고,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저래서 시집은 어떻게 가냐는 걱정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여전히 나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이유는 엄마와 가족의 무의식적 편견 때문 만은 아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건 나 스스로도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아니면 나는 정상이 아니라는 나의 생각이, 나를 여전히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글을 쓴다. 아프고 난 이후의 내가 무엇 때문에 끊임없이 힘들어하는지.

나, 상황, 가족 그 모든 것들 중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게 뭔지. 그리고 , 사실은 그것들이 별로 힘들어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깨달은 것을 남기기 위해서 글을 쓴다.


조금씩 조금씩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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