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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19. 2020

유럽여행 후기를 쓰기 전에  

여행 싫어하는 사람이 한 달 넘게 유럽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쓸 겁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그냥, 여행을 다녀왔던 몇 번의 경험들에서 좋았던 것보다는 챙겨야 할 것과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강해서 그런지 딱히 여행에 대한 큰 취미가 있지 않다. 


내가 지내는 생활 반경을 벗어나서 뭔가를 느끼거나 경험해야 하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에서 오롯이 편하게 늘어져있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이런 나를 데리고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연애할 때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유럽에 한 달이나 가는 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딱히 나한테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럽여행을 꼭 갈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는 남편에게 언젠가 내가 퇴사하게 되면 내 퇴직금 가지고 다녀오자고 가볍게 이야기했었다. 당연히 아주 먼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그 퇴사가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진짜로 실현됐고 남편은 여행을 무섭도록 빠르게 추진했다 여행을 가는 시점은 우리가 타 지역으로 이사 및 집 마련 문제로 많은 돈이 들어가는 시기여서 한 푼이라도 아쉬울 때였다.. 남편의 오랜 소원이고, 어찌 됐든 나도 가기로 했었기 때문에 가기로 하긴 했지만 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라 은연중에 여행경비로 다른 걸 하면 안 되냐는 뉘앙스를 몇 번씩 풍겼었다. 


하지만 여행을 향한 남편의 의지는 매우 굳건했고 쪼들리는 재정현황에도 불구하고 유럽여행은 타협의 영역이 아님을 매우 강하게 어필했다. 여행경비로 다른 걸 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안 가겠다고 하면 진짜 가정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 같아 잠자코 가기로 했다.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결정하고 나서 남편은 숙박, 교통편, 여행 일정, 동선, 예산관리, 여행 콘텐츠(여러 가지 현지 투어 사전예약, 관광지 사전예약, 각종 액티비티 예약 등) 등 유럽여행의 99.9%를 준비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몸만 따라가면 되는 상태로 준비했다. 


솔직히 여행을 다녀오기 전에는 남편이 열심히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직접 여행을 하면서 이 모든 디테일을 모두 준비하고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한 번도 잔소리하거나 생색내지 않았던 남편의 인내심과 준비성에 몇 번이고 감탄하고 손뼉 쳤다. 


작년 가을에 시작해 초겨울에 마쳤던 33일 동안의 유럽여행은 솔직히 말해 힘들었다.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이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익숙한 환경이 아닌 생경한 환경에서 느끼는 감각들이 한 사람을 어떻게 확장 신지 막연하게나마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글과 사진과 여러 콘텐츠들로만 봤던 것들을 직접 보고 경험할 때의 새로운 느낌. 익숙한 환경에 있을 때는 몰랐던 나의 새로운 취향과 관심. 막연히 부러워했던 것들을 일상으로 경험할 때의 생경함들을 배울 수 있었던 한 달이었다. 그 한 달간의 시간을 차례차례 기록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먼 곳으로 떠났던 여행기간 동안 내가 느꼈던 신났던 것, 좋았던 것, 싫었던 것, 힘들었던 것 등등 을 하나씩 꺼내서 정리해볼 예정이다. 


이 글은 내가 앞으로 쓸 여행기에 대한 예고편이고, 아마도 귀찮아서 계속해서 여행기를 미룰 미래의 나에 대한 도전장이다. :) 


 

후, 만장에 가까운 사진과 기록을 뒤질 생각을 하니 벌써 하기 싫다. 

하지만 써놓지 않으면 까먹을 거고, 내가 이 여행기를 언제 쓰나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한번 써보기로 한다. 



여행 첫날 런던. 이때만 해도(...) 컨디션 좋았다..

힘내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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