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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29. 2020

[day0] 퇴사를 했으니 갑시다. 유럽!

여행 안 좋아하는 여자를 데리고 기필코 유럽여행을 가기로 한 남자.


구남친현남편은 연애 때부터 나를 데리고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몇 개국을 돌아다니는 한 달이 넘는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본인은 학생 때 한 달짜리 유럽여행을 두 번 정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유럽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이 너무 좋았단다. 본인이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과 새로운 경험들을 나와 꼭 같이 해보고 싶어서 나를 데리고 언젠가 반드시 유럽여행을 갈 거라고 몇 번이고 선언했었다. 


당시만 해도 남편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유럽여행에 걸림돌이 되는 건 나의 회사였다. 남편은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시간을 조율할 수 있었지만, 내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한 달짜리 유럽여행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내 소중한 연차를 유럽여행에 몰빵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여행보다 하루씩 찔끔찔끔 충동적으로 쓰는 연차가 훠얼씬 소중하고 달콤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빨리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계획적인 퇴사였기 때문에 퇴사 시점이 확정되고 나서 남편은 불도저처럼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같이 가는 여행이지만 솔직히 나는 '여행 안 가도 돼~'라는 입장이었고, 이런 나를 남편이  멱살 잡고 데려가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여행의 모든 준비를 남편이 담당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내가 여행 준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어차피 본인이 하게 될 것이니 모든 걸 본인이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맙다!)

  

여행 포스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남편은 10월 여행을 6월 초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에...


남편은 여행 준비 전에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유럽여행 가면 뭘 하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뭘 보고 싶은지 등등.  딱히 유럽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크게 하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처럼, '아무거나요'라고 말하면 담당자(남편)에게 한소리 들을 것이 분명했다.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서 생각해 본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우디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성가족 성당) 보러 가기. 몇 백 년 동안 공사 중인데 아직도 다 지어지지 못한 천재 가우디의 필살의 역작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다녀온 사람들이 모두 다 극찬을 하길래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물인지 예전부터 막연히 궁금했다. 누군가는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조금 났다고 까지 하길래 유럽을 간다면 가우디 성당은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실제로 보니 훨씬 대단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석구석  디테일이 엄청났다

두 번째는 유럽에 있는 유명한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 가보기. 앞으로 언제 유럽을 다시 가게 될지 모르니 이왕이면 유럽의 대도시들, 유명한 것들은 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무슨 강변이라던가(이름도 정확히 모름),  프랑스의 에펠탑이라던가, 스위스의 설경 같은 유명한 경치들. 흔히 유럽여행 갔다고 하면 대부분 많이들 가는 곳은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영국의 날씨(...)와 타워브릿지
파리가 왜 낭만의 도시인지 절감하게 했던 야경과 에펠탑
직접보면 더 놀라는 스위스의 스케일이 남다른 대자연


이번 여행은 오롯이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준다(...)는 목적으로 가는 거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정은 내 위주로 짰다.  내 위주의 일정이지만 남편 역시 다음에 언제 유럽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예전 유럽여행 때 못 가본 남프랑스 & 독일 소도시 투어를 포함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프랑스의 까시스에 있는 깔랑끄. 실물로 보면 훨씬 장관이다.
진짜 기깔나는 하늘과 바다의 연속이었던 남프랑스.  바다 가운데 떠있는 사람은 니스 바다에서 놀고있는 내 남편(...)이다.
여행당시 마침 가을이 한창이었던 독일
 뮌헨 레지덴츠 궁전 앞 호수. 어느 곳을 가든  우리나라와 다른 느낌의 하늘과 자연이 뽐내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차 저차 해서 남편이 준비한 일정은 총 33일. 영국(런던), 스페인(바르셀로나), 프랑스(아비뇽, 꺄시스, 엑상프로방스, 앙티베, 깐느, 니스, 파리), 독일(하이델베르크, 뷔르츠부르크, 밤베르크, 로텐부르크, 퓌센, 뮌헨), 이탈리아(피렌체, 폼페이, 소렌토, 로마), 스위스(취리히, 라우터브루넨, 튠, 베른, 융프라요 후) 총 6개 나라와 여러 도시를 를 거치는 일정이었다. 남편이 모든 일정, 숙소,  교통편, 액티비티, 투어를 모두 담당한 자유여행으로 우리의 유럽여행 일정이 확정되었다. 


남편이 차린 다 된 밥상에 내가 숟가락만 얹는 수준으로 9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나서 가장 먼 곳으로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인천공항으로 들어가는 팔팔한 내 모습.


2019년 9월 30일. 여행을 떠나는 첫 날.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를 탔다. 신혼여행 때 발리로 가는 4시간짜리 비행이 나에게는 가장 긴 여행이어서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어떻게 타나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12시간 비행은 꽤 할만했다. 지겨울만하면 기내식을 주고, 간식을 주고 기내식을 주더라. 


별 맛 없는데 괜히 먹고나면 아쉬운 비행기 기내식. 배고픈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맞춰 배급(?)이 나와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오랜시간 비행기를 타는 게 처음이어서 몰랐는데 컵라면을 달라고 하면 물을 부어서 컵라면도 갖다 주고(!), 중간중간 피자나 삼각김밥 같은 간식도 주더라. 심지어 컵라면은 달라고 하면 계속 주는 거 같던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여행 첫날 되게 설렜었던 것 같다. 평생 진성 집순이로 살아왔던 게으르니스트인 내가 유럽여행을 오다니. 그것도 한 달씩이나!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내가 엄청 신나 있다. 허허

대학생 때도 안 다녔던 유럽여행을 결혼하고 나서 가게 되다니. 글이나 영화로만 봤던 도시들에 내가 직접 간다는 게 여행 당일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제야 실감이 났다.


" 와! 나 태어나서 영국 처음 와봐! 짱이다! "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도모르게 소리쳤다. 

왜,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 기내를 벗어날 때 느껴지는 다른 나라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그 나라만의 냄새가 있지 않은가. 그 공기를 마시니까 비행내내 설레었던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비록 도착한 당일에는 시간도 저녁이었고 (영국답게)비가 와서 숙소와 시내로 찾아가는 길이 힘낯설고 힘들었다. 히드로 공항부터 런던 숙소에 도착하는 길 까지는 사진을 찍을 여력이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헤치고 큰 케리어와 배낭을 메고 낑낑대며 숙소에 겨우 도착해서는 둘 다 바로 곯아떨어졌기 때문. 

런던 첫날, 숙소 가는 길. 영락없는 영국 날씨(...)


힘들었지만 설렜던 여행 첫 날,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부터 숙소의 침대위에서 잠들 때 까지 오래도록 생생하게 느꼈던 그 생경한 느낌이 포스팅을 쓰다보니 솔솔 떠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어쩌다 보니 도착한 영국! 영국 여행 후기는 다음 글부터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 여행 첫날, DAY 0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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