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암에 걸리고, 30년이 지났다

01. “아빠, 나도 있는데?” – 다섯 살의 암 발견기

by 나리


내 태몽은 벚꽃이었고, 유아기 장래희망은 나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설 소나기 속 보라색 꽃처럼 내 병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인생 곳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이날은 내 인생의 첫 기억이자,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은 그 시절 트럭으로 장사를 하셨고, 그날도 어딘가로 가는 길이었다.
트럭 앞 좌석에는 아빠, 나, 엄마 순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고, 나는 접었다 폈다 하는 작은 보조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운전 중에 페트병에 담긴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고
무심히 아빠의 목을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말했다.

“아빠 목에 뭐가 있어!”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남자들만 있는 거야~”

그때, 아무렇지 않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있는데?”

만약 이 장면이 드라마였다면, 바로 뒤에 카페베네 엔딩곡이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
커쥬어~ 마이 걸~
내 병은 그렇게 드라마처럼 우연히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은 다섯 살 때였지만, 병명이 갑상선암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여덟 살 때였다.
그때 우리 가족은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었고,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춘천의 한 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당연히 큰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신혼 시절, 그리고 친가 가족들이 계셨던 서울의 한 대학교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어린 여자아이의 목에, 성인 남자 목울대처럼 툭 튀어나온 혹이 있었는데도, 병원에서는 그냥 '단순 물혹’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춘천으로 돌아왔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그 시기 춘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다시 춘천으로. 정말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남동생이 태어났고, 우리 가족은 춘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 목의 혹은 점점 더 눈에 띄게 되었고, 엄마는 “여자아이 목에 혹이 너무 흉하다”며 수술을 결심했다. 이게 바로 엄마의 촉!
춘천에서 수술을 받았고, 목을 열어보니 그건 단순한 혹이 아니었다.
악성종양.
그리고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춘천에서는 수술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곧바로 다시 서울 병원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 무렵, 우리 집에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엄마는 6남매 중 막내, 아빠는 8남매 중 일곱째여서 다들 일찍 돌아가셨고

내가 유일하게 만난 조부모님은 외할머니뿐이었는데

할머니는 너무 옛날 분이셨다.
친손주만 예뻐하고, 나는 차별받았고, 어린 마음에도 그게 너무 싫었다.
“할머니 냄새 싫어.”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할머니가, 내가 수술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내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날,
마취에서 채 깨지 못한 상태에서,
의식을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나만을 보고 있던 엄마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그 말을 듣고, 엄마와 아빠는 오열했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싫어했던 할머니를, 암 수술 직후의 내가 찾았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이, 나를 처음으로 죽음에 가장 가까이 데려다 놓았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상선암은 나비 모양의 내분비 기관에서 시작된 암으로, 나비암이라고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