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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ug 03. 2023

17. 아픈 형아를 둔 동생의 삶이란...

도톨이도 힘들겠지

  서로 썩 살갑지는 않아도 사이좋게 추르도 나누어 먹고, 한 번씩 투닥투닥하면서도 가까이에 누워서 쉬기도 하고 엄마를 나누어 차지하는 데 익숙해진 오톨,도톨이.

I성향의 오톨이와 E성향의 도톨이는 그럭저럭 서로를 인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톨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더욱 움직이는 걸 힘들어하고, 예민해지면서 둘의 관계는 좀 더 나빠졌다.


엄마 옆자리를 나눠가져요




  그래도 오톨이가 아프기 전에는, 도톨이가 집적거리면 같이 장난치거나 싸우면서 대응도 해주고, 갑자기 뛰어들어서 덮치거나 해도 조금 화내고 말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않았는데, 아프고 나서는 도톨이가 근처에만 와도 으르렁거리며 못 오게 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 몸이 아프고 힘드니, 도톨이를 받아줄 여력이 사라진 걸까.

  도톨이는 무념무상으로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오톨이가 난데없이 긴장하며 근처에 오지도 말라고 화를 내니, 도톨이가 어이가 없는지 귀를 뒤로 넘기면서 기분 나쁜 티를 내지만, 오톨이가 덩치가 훨씬 커서인지 매번 덤비지는 않는다. (가끔 덤빔 ㅡㅡ;;;)

  "도톨이가 자꾸 형아를 갑자기 놀라게 하면서 뛰어드니까 형아가 싫다잖아. 도톨이도 이해해 줘 알았지?"

  내 말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톨이를 데려올 때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두 녀석이 골골대며 같이 뒤엉켜 자고 서로 핥아주는 모습이었는데... 오톨이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이런 모습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혀,,형아, 엄마왔어 빨리나와" (사고칠땐 협동심 짱)



  

  오톨이가 많이 아프고 엄마랑 출근까지 같이 하기 시작하면서 도톨이는 집에 혼자 남는 시간이 많아졌다. CCTV로 한 번씩 보면, 혼자 남은 집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잠을 자고,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거리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집에 같이 있는 날에도 별다르게 다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혼자 남겨두고 나왔다는 것이 자못 마음에 걸린다.

우리 집 CCTV에는 통화하듯이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기능이 있는데,

  "도톨아~ 엄마지요~~" 하고 부르면 쪼르르 뛰어와서 CCTV 앞에 앉아서 갸웃거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부르고 싶다.


도...도톨아 너무 가까워


  고양이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들이라고 하지만, 내가 집에 왔을 때 반기는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고양이들도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고, 상호관계가 있어주어야 하는 아이들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도톨이는 더욱 엄마쟁이가 되어, 굳이 내 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거나 등을 대고 누워서 그릉그릉 대고, 잘 때에도 내 옆에 꼭 붙어있으려고 한다. 자다가 얼핏 깨서 눈을 떴을 때 도톨이의 감은 눈과 수염이 정면에서 보이면 자다가도 슬쩍 웃음이 난다.


  또 도톨이는 내가 부르면 쪼르륵 달려오는 강아지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부르면 들었으면서 모른 척 무시하는 다른 대다수의 고양이들과는 조금 성격이 달라서 더 안쓰럽고 미안하다. (캣타워 꼭대기에 있다가도 부르면 우당탕탕 하면서 뛰어내려오는 우리 도톨.)


엄마가 날 부른거같았는데....


  혼자 집에서 놀다가 돌돌이의 끈끈한 종이가 도톨이 수염에 붙었는데 그걸 2시간 동안 못 떼고 달고 다니는 모습이 CCTV에 잡힌 적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가 평소에 돌돌이 종이 뜯어먹지 말라고 했잖니) 도무지 안 떨어지는 종이를 수염에 붙이고 도닦듯이 앉아있는 도톨이 모습이 웃겨 죽을 뻔했지만 혼자 혼비백산했을 도톨이 마음이 좀 안쓰럽기도 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2시간씩이나 매달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ㅋㅋㅋㅋ (웃어서 미안, 집에 와서 뽑힌 수염이 붙어있는 종이를 바닥에서 발견하고 혼자 폭소했다는...)




  오톨이가 아프고 나서 식탐이 병적으로 심해진 데다, 정해진 시간에 주사와 밥을 같이 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도톨이도 할 수 없이 같이 제한급여를 당하고 있다.

  일정 시간 안에 다 안 먹으면 엄마가 밥그릇을 뺏어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도톨이도 이젠 적응을 해서, 깨작거리며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한 톨씩 먹던 습관을 버리고 그나마 한 자리에서 잘 먹는 편이다. 이렇게 하니, 입 짧던 도톨이도 밥시간을 내심 기다리는 눈치다. 특식으로 추르라도 뿌려주면 신이 나 하는 도톨이를 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톨이가 아프기 전 사이좋을 때.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




  도톨이는 현재까지 크게 아픈 데가 없고,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밥도 잘 먹고, 놀아주면 열심히 뛰어노는 도톨이가 참 예쁘다. (심지어 아무도 안 놀아줘도 필 받으면 혼자 갑자기 점프와 슬라이딩을 하며 뛰어댕기는 모습을 보면 진짜 쟤가 월드컵 국가대표를 하려나 보구나 싶으면서 너무 웃긴다. 도톨이는 나의 삶의 엔돌핀.)


  형아가 아파서 엄마가 형아만 데리고 여기저기 자주 다니고 형아한테 더 신경을 쓰고 애잔한 마음을 좀 더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도톨이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

  형아가 아픈 바람에 신나게 놀 상대가 사라진 우리 도톨이를 위해 내가 좀 더 자주 낚싯대를 들어주어야겠다.


그래도 형아 맘속으론 도토리 사랑하지? ..... 그..그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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