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오전 여섯 시 십삼 분. 또렷하게 눈이 떠졌다.
심장이 뻐근한 기분이 들고 몸엔 평소보다 빨리 피가 도는지 가뿐한 느낌마저 든다.
고개를 내려 침대 밑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을 살핀다.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예쁜 우리 딸.
깰세라 살금살금 휴대폰을 확인한다. 여전히 오늘의 날씨가 ‘맑음’으로 예보되었는지 확인!
눈을 다시 감아보지만 이미 온몸이 깨어나서 두근댄다.
얼마만이지 설레서 눈을 뜬 것이?
그러니까 나는 오늘 혼자 ‘국립현대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나와 한 약속이다.
9월을 맞아 우리나라에는 키아프 서울 (한국 국제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이 열린다. 수많은 미술 갤러리들이 한국의 미술축제를 위해 방문하고 서울의 다양한 갤러리에는 활기가 돈다는 미술인들의 축제! 그 때문인지 알고리즘에 다양한 전시 소식이 보였다.
가는데 두 시간, 오는 데 두 시간, 보는 데 두 시간…이 비경제적인 짓을 맘먹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말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쉬는 날 갈 전시를 미리 찾아두고 가곤 했다.
비행으로 해외를 가서도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는지, 특별전이 있는지를 찾아 방문하곤 했다.
갑자기 쉬는 날이 바뀌는 건 예삿일이고, 쉬는 날에도 컨디션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저질 체력 승무원인 나에게 미술관 가는 취미는 맞춤형이었다. 공연처럼 예매해 뒀다가 못 가게 될 위험도 없고, 같이 갈 친구와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뭐 안 가도 되는! 부담 없는 취미 생활이니까.
미술을 잘 몰라도 가만히 좋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김에 주변 예쁜 카페를 찾아가는 날엔 에너지가 차올랐다.
물론, 쉬는 날 침대를 벗어나 문화생활을 했다는 것이 주는 고양감도 한몫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가고 싶다’라는 생각조차도 귀했다.
그런 것을 욕망할 에너지 자체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엄두가 안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굳이’ 두 시간 남짓의 관람을 위해 네 시간을 이동하는 일이 하고 싶어 졌고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이동 시간에 볼 소설책도 골라서 이미 가방에 넣어뒀다.(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골랐다)
딱 소풍 가기 전 설렌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여행날처럼 온몸과 정신이 또렷이 일찍 깨어버린 이 아침, 아이도 세상모르고 잠을 자는 이 아침.
나는 문득 이런 작은 이벤트에 설레는 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에게 이런 자극과 행복을 스스로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제부터 고심해서 골라둔 ‘연두색 미니 원피스’가 땀으로 젖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술관은 더 멀고, 전시가 생각만큼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침에 이 생생한 설렘을 담아두었으니 그걸로 됐다.
오랜만에 이런 연두색 파릇한 기분을 느낀 것으로 만족한다.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생겼을 때 하기로 맘먹은 것만으로도 날 칭찬해주고 싶다.
‘너 아직 좀 귀엽구나? 서울 간다고 신나서 하루 전날 코디까지 끝내다니 … 이거 이거 소녀잖아?‘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제법 에너지가 찼구나. 이 에너지를 오늘처럼 날쌘 실행력으로 치환해 두고 싶다.
가끔은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