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아마도 부메랑

by 날랩

자고로 겪어보지 않았다면 남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되고, 아는 것처럼 흉보지도 않아야 하는 법이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는 점이 이런 점이다.


겪어보지도 않고서 무심히 남을 판단하고 흉봤던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할 때.


결혼을 준비할 땐 나보다 먼저 준비했던 친구들의 행동들,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이 ‘자료화면’처럼 재생되면서 아차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아 정말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나한테 맘을 써주고 시간을 내준 거였는데 그걸 모르고 서운해만 했구나’


‘그때 정말 맘이 힘들었을 텐데, 뭘 몰라서 제대로 공감도 못 해줬었네’


결국, 겪어보지 않고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나도.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이제야 알 게 된 것이다.


지금 하는 육아도 다 아는 것처럼 경솔을 떨어선 안된다. 나는 딱 11개월 아기의 육아까지만 알 뿐이다.


그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남의 삶을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 사실을 이제야 체감하고 있으니 인생 경험치라곤 ‘수능’ ‘취업’ 따위가 전부인 이십 대 때의 나는 참으로 오만방자했다.


장거리 비행에 갓난아이가 타는 경우 부모는 주변 승객의 눈치를 보랴 아이를 케어하랴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멋모를 그 당시엔 내 담당 구역에 어린아이가 타면 겁부터 났다. 아이를 달랠 줄도 모르는 데다가 심신이 지친 부모들의 예민함도 함께 케어해야 했기 때문에.


아직 24개월 미만인 아이는 좌석 점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좁디좁은 좌석에서 부모의 무릎에 앉아 그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성인에게도 장거리 비행은 답답하고 괴로운 일인데 아이가 울며 보채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이를 보느라 혼이 나간 엄마 옆에서 대부분의 아빠는 그저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엄마를 위해 아이를 안아주려 해도 예민해진 아이는 그저 엄마만 찾는 ‘엄마 껌딱지’ 상태가 된다. 돕고 싶지만 승무원인 나도, 배우자인 아빠도 엄마를 도울 수 없는 긴 긴 시간이다.


“아빠가 평소에 육아를 했어야 애기가 가지. 저건 뭐, 엄마만 저렇게 고생이라 어쩜 좋아.”


시간마다 훅훅 지쳐가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를 책망하듯, 다 아는 듯 흉을 봤던 그때의 내 모습이 선명히 ‘자료 화면’으로 떠올랐다.


아이가 장염으로 입원한 대학 병원에서.


“아버님 원무과에 먼저 접수 좀 해주시겠어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남편은 아이를 잠시 나에게 넘기려 했다.


“으으으아아악!!!”


평소에도 아빠한테 꼭 붙어서 절대 나한테 안 오는 아이 었기에, 아파서 예민한 지금은 더 심하게 떼쓰고 울며 버텼다. 엄마한테 안 가겠다고.


발버둥 치며 나를 거부하는 모습이 흡사 신데렐라를 구박하는 계모가 된 듯한 기분이다.


‘나 네 엄마야…. 왜 이래…민망스럽게…. 다들 놀라잖아… 딸아…. 체면 좀 살려줘…’


입원하는 동안 운전을 할 줄 아는 남편이 집에서 자야 했다. 사실 보호자가 한 명만 있어야 해서 대부분의 경우 그냥 엄마가 쭉 상주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아빠 껌딱지여서 굳. 이. 남편이 아침부터 와서 로비에서 셋이 함께 만나거나 나랑 교대를 하며 지냈다.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남편이 병실에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 하릴없이 로비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바깥 산책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다시 한번 자료화면으로 그 장면이 반복 재생되었다.


영혼이 나간 엄마와 발버둥 치는 아이, 그리고 그 옆에서 참견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던 아빠들.


그 시절에 나는 결혼 생각도 없으면서 그들을 흉봤더랬다.


“저렇게 애기가 엄마만 찾으니 역할을 분담하기는 무슨. 어쩔 수 없이 다 엄마가 해야 하잖아.


미리미리 좀 돕고 같이 했으면, 이런 상황에서 애기가 아빠한테도 가고 좀 좋냐 이 말이야.

이러니까 결혼을 하고 싶냐고. 애를 낳고 싶겠냐고.”


네??


어머니?? 내가 만약에 지금 상황에 이 말을 들었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쏙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이한테 예쁨(?) 받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데, 그리고 남편이 보는 동안 잡다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아니 다 떠나서 애기가 나한테 안 오는 게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한데! 욕까지 들어야 하냐고!!


왜 네가 결혼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걸 내 탓을 하고 앉았어!!!!!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 중인데!!


그 시절 아버님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올리면서 나도 그때 그들의 모습과 같이 옆에 서서 “아빠 힘들어. 엄마한테 와. 우리 딸”이라고 애처롭게 어필해 본다.


고개를 훽 돌리며 아빠한테 쏙 안겨버리는 얄미운 딸을 그저 바라보면서.


’ 진짜, 죄송했습니다. 돕지 못해 맘도 불편하고 속도 많이 상하셨겠어요.‘


오늘도 나는 인생의 경험치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