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입원
남편의 퇴사와 이직이 결정된 후, 우리는 주말부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직하는 새 회사가 지금의 집과는 꽤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남편이 주말에만 오는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하는 우리로서는 꽤 큰 결정을 한 셈이다.
내가 복직한 뒤에는 ‘주말 부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주말에도 볼 수 없을 것이 뻔했다.(나는 스케줄 근무를 하는 승무원이다.)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과연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불안이 큰 상태이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3주 남짓의 자유시간을 한껏 활용하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간 오키나와 여행, 아이를 맡기고 간 부부만의 발리 여행까지.
1년에 두 번이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을 2주에 연달아 다녀왔다.
남편은 꽤나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누려야 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배운 나에겐 ‘지금’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둘만의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 밤.
아이를 재우고 요새 대세 중 대세인 ’폭삭 속았수다‘를 보기 시작한 그 날 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의 방귀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왔다.
낮에 변의 색깔이 이상해서 소아과를 다녀왔는데 그때 처방받은 유산균 때문에 저런 엄청난 방귀를 뀌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것마저 귀여워하며 방엘 들어갔다.
엄청난 방귀소리를 귀여워하며 방엘 들어갔다.
아이는 잠결에 설사를 했고 조용히 자는 아이의 기저귀를 합심해서 갈고 있던 그때 아기가 돌연 왈칵 토를 했다.
분유를 먹고 게워낸 토만 보던 우리는 되직하고 양도 많은 토에 당황했다.
혹여나 누운 아이의 목에 토가 걸리진 않을까 아이를 안아 올려 등을 두들겼고, 그러자 우웩- 하는 소리를 내며 토를 분수처럼 뱉어내기 시작했다.
심각함을 깨달은 우리는 허둥대기 바빴다.
이불을 치우고 옷을 갈아입히려다 내 어깨에 기댄 아이가 또 한 번 토를 했을 때, 우리는 응급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토요일 밤 11시의 일이다.
경기도의 응급실을 자동으로 안내해 주기 때문에 선택지가 안산, 분당이었다.
모두 우리 집과는 너무 먼 거리였다. 경기도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조금 더 가까운 곳은 없냐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인하대병원으로 갔다.
급히 응급실에 갈 때 필요한 것들을 검색해 보고 서둘러 짐을 싸서 아이를 둘러메고 차에 올랐다.
가는 내내 제발 별 일이 아니기를, 큰 탈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아이는 병원에 가서도 설사를 했고, 병원에 도착하자 증상이 좀 더 심해지는지 배가 터질 듯이 빵빵히 부풀어갔다.
작디작은 손에 링거를 꼽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늘 듣는 칭찬이지만 ’ 아이가 순하네요 ‘ ’씩씩하네 ‘라는 의료진들의 칭찬도 그날은 영 반갑지 않았다.
아이가 티를 잘 안내서 아픈지도 모르고 방치한 것 같고, 내가 예민하지 못해서 아이의 병을 키웠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엑스레이를 보러 갔는데 아이의 뱃속에 까만색으로 엄청난 가스가 가득했다.
배가 많이 아팠을 거라고, 조금은 심각한 상태라고 전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맘이 너무 괴로웠다.
결국은 입원이 결정되었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배운 대로 아이의 빵빵한 배를 조심스레 마사지했다.
정말 터지는 건 아닐까 싶게 딱딱하고 빵빵히 부풀어 오른 배를 조심히 살살 만지자 아이는 괴로워했고, 그렇게 몇 분 뒤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다.
‘뿡!’
‘뿌부부부 붕’
‘뿌방’
한 번 터진 방귀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 소리가 어찌나 감사한지,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모른다.
응급실 선생님들도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 주셨다.
자 그래 이제 빵빠레는 터졌다 울 애기.
얼른 낫고 회복할 일만 남았어!!
아무 정신없이 모두가 잠든 6인실로 들어갔다.
보호자는 한 명만 상주할 수 있었다.
응급실 도착해서부터 내내 아빠한테만 붙어있던 ‘아빠 껌딱지’ 우리 딸은 아빠가 멀리로 회사 가기 전부터 또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맘 같아선 모두를 위해(?) 내가 집엘 가야 맞았지만 난 여태 면허가 없다. (올해는 진짜 진짜 따야겠다고 또 생각했다.)
집에서 필요한 짐을 챙겨 오려면 남편이 가야만 했다.
아빠한테서 안겨서 나에게 안 오려는 이 아픈 아이와 당장 오늘 밤도 덜컥 겁이 났지만 해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그렇게 나는 아빠 껌딱지 아가와 함께 둘 만 지내는 앞으로의 생활을 조금 ‘하드’하게 연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