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달리기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많아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신체이든 정신이든. 고통이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이유로 아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꽤 자주 접한다.
나도 한번 크게 아파보니 그 ‘아프다’는 말의 의미를 잘 못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공감’을 내 고통의 경험과 이해만으로 상상해 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강도의 아픔으로 아파하고 있는지 정작 이해할 수 없단 가끔은 내 상상 속의 아픔을 기준으로 그들의 아픔을 느끼는 것 같아 나의 한계에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난 정말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그 ‘모름’을 참 모르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모름’을 모른다.
건강을 함께 실천하고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시작한 것이 있다. 바로 ‘만보 챌린지’ 다. 만보 챌린지의 방법은 아주 심플하다. 그냥 자신이 하루에 얼마나 걸었는지 핸드폰앱을 이용해 측정해서 단톡방에 인증사진을 공유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가끔 서로의 걸음수에 응원을 해주면 된다. 각자의 하루 목표 걸음수가 다르고 생활패턴도 달라서 경쟁의 의미는 더더욱이 없다. 처음엔 누구는 걸음수가 적고 누구는 열심을 내서 걸음수가 엄청 높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기한 것은 전체 가족들의 평균 걸음수가 높아졌고 가장 많이 걸음 사람과 적게 걷는 사람의 걸음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걸음수가 적었던 가족들은 조금 분발해야겠다면서 더 걸을 방법을 찾았고 걸음수가 높았던 사람들은 자신만의 목표량에 따라 열심을 다한다.
이틀째 둘째 아이가 미열이 있어서 유치원을 못 가는 상황이 생겼다. 달리기를 하러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만보 챌린지에 인증샷을 위해 어떤 방법이든 걸음수를 채워야만 했다. 여러 방법을 찾던 중 그냥 집에서라도 달려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자리 달리기.
제자리 달리기도 달리기가 될까?
그냥 집안에서 걷지 않고 이리저리 제자리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부엌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빨래를 널 때, 다림질을 할 때, 심지어는 설거지를 할 때도 뛴다. 남편은 처음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혀를 차진 않았지만 거의 찬 것으나 마찬가지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저녁에 만 8 천보를 찍어내는 결과를 보고는 새삼 그 결과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기도 짬짬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묻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보면 개그 코너에나 나올 만한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제자리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제자리 달리기도 ’ 달리기‘가 될 수 있다.
제자리 달리기를 그렇게 하고 나니 다음날 다리 근육이 너무나 아팠다. 이것으로 보아 운동 효과가 있음이 확실하다. 제자리 달리기는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것이다. 뒷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어제 운동회를 한 것처럼 근육이 뭉쳐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 의미는 내가 평소에 사용하고 있지 않은 근육이 일을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제자리 달리기는 물리적으로 한 목표점에 도달하진 않았지만 신체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또한 이렇게 속도 없이 제자리 달리기를 하면 몸에 열이 난다는 것이다. 걷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이 같은 속도로 몸을 움직이지만 이렇게 제자리를 달리니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난다는 것은 칼로리가 소모되고 혈액의 순환이 빨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천천히 제자리에서 뛰는데 열이 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달구어진 몸은 더욱 나를 활동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창문을 열게 했고 다른 활동을 시작하도록 예열을 해준다.
우리는 감정이 어떠한 행동뒤에 따라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하버드 어느 교수님에 따르면 감정과 행동은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웃는’ 행동을 하면 ‘기분 좋은’ 감정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 그 원리라고 한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달리기를 하니 몸과 기분의 상태가 좋아진다.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에너지를 느끼는 기분상태가 된다. 또 하나의 장점이다.
달리기에도 ‘복리’가 적용된다.
이자율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단리이자와 복리이자. 단리이자는 원금에 대해서만 이자를 계산하는 방식이고, 복리이자는 원금에 대한 이자뿐만 아니라 이자에 대한 이자도 함께 계산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래서 복리이자를 적용하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리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숫자가 늘어날 수 있는 ‘연 수’가 필요하다. 복리의 개념을 설명할 때 워렌버핏을 예로 많이 들기도 한다.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렌버핏에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복리의 기능 때문이란다. 그의 나이는 지금은 93세. 현재 세계에서 부를 가장 많이 축적한 사람이지만 그가 진짜 부자 된 시기는 65세가 되었을 때라고 한다. 그동안 쌓아온 복리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복리의 효과를 보기까지 제자리걸음 같은 많은 순간들도 있지 않았을까.
사소한 집안에서의 제자리 달리기에서 대단한 교훈을 나름 얻어낸다. 이 원리의 효과룰 보기 위하서 나의 제자리 달리기는 아침 일찍 시작한다. 왜냐하면 내게는 걸음수를 축적할 ’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틈이 날 때마다 틈틈이 걸음 수를 축적하면 그 결과는 나를 놀라게 한다.
또한. 달리기는 밖에서만 하는것라고. 꼭 옷을 갖춰 입고 준비, 차렷 땅 해야 한다고 나는 또 나의 생각안에 갇혀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생각과 접근 방식을 다르게 적용시켜 보기보다는 핑계를 만드는 게 더 자연스럽고 쉬웠던 건 아닐까.
제자리 달리기로 배우는 것은, 제자리 달리기는 항상 제자리인 것 같지만 나는 많은 것을 ‘축적’하며 여전히 달리고 있으며, 달린다고 ‘결심’만 한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