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뭘 먹을지 고를 고민을 할 필요도 없고 고른 메뉴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거의 웬만한 음식들에 호불호가 없으니 상관없다. 혹시 불호가 되더라도 불평불만을 내뱉는 스타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은 먹고 싶은 점심을 먹고 나도 먹고. 모두에게 해피엔딩. 그런데 말이지. 가끔 이런 마인드로 여러 명이 모이면 곤란해진다. 특히 회사에서 이런 경우가 빈번한데 잘 못 고른 점심메뉴에 대한 책망이 무서운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걸까.
음식에 대한 취향.
면을 좋아하고 간장을 좋아해. 하지만 칼국수와 수제비가 있으면 수제비가 더 좋더라. 주기적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먹어줘야 해. 조개맛인지 조미료 맛인지 모르겠지만 그 짭짤한 육수가 너무 좋아. 콩국수나 팥칼국수의 고소한 맛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조금 친해지려고 노력 중.
나이가 들면서 부쩍 야채랑 친해졌지만 오이와, 수박 계열에서 나는 비릿한 향은 싫다. 고추가 아무리 맵지 않더라도 고추 특유의 향과 피망을 싫어해. 멸치에 꽈리고추를 함께 넣고 볶는 건 아직도 맛있는 걸 잘 모르겠어. 고수를 좋아하고 향이 진한 쌀국수가 좋아.똠양꿍을 못 먹었지만 고수랑 친해지면서 똠양꿍과도 살짝 친해진 듯. 굴과 멍게의 비릿함도 싫어했지만 이젠 너무 좋아. 겨울엔 굴국밥이지.
매운 것을 잘 못 먹고 아주 매운 건 고통이라고 생각해. 왜 고통을 즐기는 걸까. 땀도 뻘뻘 흘리면서. 게다가 입으로 즐겨 넘기더라도 온 뱃속에서 후폭풍이 너무 심해. 아예 근처도 가지 않을 거야. 생마늘도 절대 안 먹다가 최근에 쌈 싸 먹을 때 그 알싸함이 좋아 엄청 먹기 시작했는데 속에서 못 받아주더라고. 너무 슬퍼. 그래서 맛있지만 조금 적당히 먹고 있지.
부드럽게 넘어가는 음식이 좋아. 그래서 그런지 죽이나 수프도 너무 맛있어.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가잖아. 그렇지만 질겅질겅 씹어 먹는 것도 좋아해. 마른오징어나 육포도 없어서 못 먹지. 가끔 마트 애견코너에서 파는 개껌을 보면 왠지 맛있어 보여. 개껌도 질겅질겅 씹으니까. 그렇지만 껌은 아냐. 껌을 씹을 때는 저항감이 없잖아.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곱창은 좋아해. 야채볶음 곱창이든 그냥 곱창구이든 다 좋아. 질깃 하잖아.
과자는 부드러운 것보다 바삭한 게 좋아. 그래서 생라면을 부숴 먹거나 마른 누룽지를 씹어 먹곤 해. 특히 이런 탄수화물은 씹을수록 고소하니 더 먹게 되고 살로 가지. 영양가 없고 몸에 안 좋은 걸 알지만 자꾸 손이 가. 달달한 것보다는 짭짤한 게 좋아서 어릴 때는 소금 후추 기름장을 방에 숨겨놓고 몰래 찍어먹었어. 그때도 혼날 줄을 알고 있었나 봐. 어려서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과자도 짠 계열과 달달 계열이 있고 바삭과 부드러운 종류가 다르잖아. 지나고 보니 내가 좋아하단 과자들은 짭짤 바삭이야. 비슷하게 바나나칩은 잘 모르겠어.
어릴 때는 익힌 무를 아주 싫어했지만 이젠 조금씩 익힌 무 와도 친해지고 있어. 아직 뭉개지는 조린 무의 맛이 완전히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해해 보려고 해. 김치는 하얗고 두툼한 대 부분이 좋았는데 이제는 야들야들 양념이 많이 묻은 주름 부분이 맛있어. 무조건 익힌 김치만 먹었는데 이젠 갓김치의 맛도 알 것 같아.
육개장의 얼큰함도 좋고 샤브샤브의 담백함도 좋아. 이렇게 추워지는 날 국물은 무조건 옳지. 어릴 땐 고기를 먹다가 토할 정도로 고기가 좋았는데 (너무 꾸역꾸역 먹느라) 이젠 소화가 잘 안돼서 샤브샤브나 마라탕에 야채만 건져 먹지.
가끔 오코노미야끼도 먹고 싶어. 이건 자극적인 그 까만 소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비슷한 이유로 다코야끼도 좋아.
과일은 별로 안 좋아해. 달달해서 주변사람들이 왜 안 좋아하냐고 묻지만, 먹으면 약간 풋내가 느껴지는 것 같아. 마냥 달기만 한 과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어릴 때는 귤과 사과도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조금 귀찮네. 자연에서 오는 건강한 본연의 맛보다는 조미료 팍팍 자극적인 맛을 좋아해.
아주 초등학생 입맛이라 햄 소세지같은 가공식품을 좋아하는데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모든 햄을 다 좋아하진 않아. 스팸류나 페퍼로니 같은? 그 찐한 햄들을 좋아해.
포도나 수박은 씨 발라 먹기가 너무 곤란해. 그래서 뼈 있는 치킨보다 순살 치킨이 좋아. 그래서 생선도 손이 잘 안 간다. 먹기 전에 냄새나는 것도, 치울 때 냄새 남는 것도. 감자탕의 얼큰함이나 감자는 좋지만 뼈가 어려워서 손에 잡히는 큼직한 고기만 건져 먹어. 꽃게탕을 좋아하지만 익은 꽃게의 살 발라먹는 것도 일이라 잘 안 먹게 돼. 그치만 간장게장은 쪽쪽 잘 빨아먹지. 오히려 양념게장은 조금 비릿한 것 같아서 간장만 먹어. LA갈비도 좋아하지 않아. 등갈비는 푹 삶아서 뼈가 쏙 빠져야 해. 질긴 걸 좋아한다면서 막상 뼈 근처의 물렁뼈나 쫄깃쫄깃한 고기는 별로야.
한 여름엔 꼭 냉면을 먹었는데. 세 젓가락에 끝낸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이가 시려서 예전처럼 즐겨 먹지는 못하게 됐어.
밀떡이 좋아. 쌀떡이 더 몸에 좋다고 하지만 밀떡의 그 말랑쫀득한 맛을 이길 수가 없어. 쌀떡은 좀 더 무언가 퍼진 느낌. 고추장 떡볶이보다는 간장 떡뽂이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순대에 간을 좋아하는 데 퍽퍽하지만 꼭꼭 씹어먹으면 맛있어. 가끔 잘못 삶았는지 걸레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해야 해
청국장과 된장을 좋아하듯이 치즈를 좋아해. 쿰쿰한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쿰쿰한 게 좋더라고. 잭 푸릇이 그런 쿰쿰함이 있다던데 전혀 모르게 잘 먹었어. 두리안은 안 먹어 봤지만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계란 후라이 보다는 계란말이가 좋아. 후라이의 날달걀스러운 부분이 너무 부담스러워. 익지 않은 생걸 먹는 느낌. 회와 육회는 좋아하면서 이상하게 계란 후라이는 좀 그렇더라. 그치만 흘러내리지 않게 적당히 반숙은 괜찮지. 오히려 소스에 들어갈 때 노른자의 날것은 고소하고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