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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Nov 07. 2024

토지.4권

* 책 속 내용 일부 포함되어 있음

이번 주 《토지》를 읽은 감상평


 서희는 불쌍하고 월선이는 미련 맞고. 조 씨네는 최참판댁을 꿀꺽했고 서희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 와중에 두리는 또 어쩌냐고. 게다가 을사조약까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조씨네가 최참판댁에 후견인으로 있는 모양새가 꼭 그때 조선총독부 같다.  살림이나 외교까지 제 마음대로. 자기들이 보호한다면서.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식으로 대입해서 소설을 꾸려 가는 걸까. 결국 우리가 수탈당한 토지와 주인으로서의 권리는 서희가 대신하여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아무리 조 씨가 재산을 빼돌린다 하더라도 토지를 빼돌리진 못하겠지. 어떻게 하면 내 땅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서희가 마냥 나이를 먹는다고 그게 될 일일까. 걱정이 된다. 사실 지지기반이라던가 이런 게 없는데 어른이 되어서 조씨네를 쫓아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수동이도 죽고 만다. 점점 서희는 고립무원이 되고 마는데.


 가만 보면 작가님은 서희를 싫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원래 주인공이라는 건 아주 조금의 좋은 점도 부각해서 돋보이게 해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서희에 대한 묘사를 보면 엄청난 미인인데 성질이 못됐다고 묘사된다. 

-그는 원한에 사무쳐 있었을 뿐 수동이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148
-포악스럽고 음험하고 의심 많고 교만한 서희.  211
-떠밀어내거나 볼을 쥐어박히는 한이 있어도 시중을 드는 처지고 보면 나타나야 할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 서희 생각이다. 208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서희에게 참을 수 없는 시샘을 느낀다. 399

 물론 어려운 일을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두둔하기는 한다.

외톨박이가 되어 헤매거나 혹은 병들거나 상처받아 힘이 약해진 맹수는 유독 사납다. 209

 나는 주인공은 착하고 악역은 성격이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착하게 묘사되지 않는 서희에게 쉬이 정이 가지 않는다. 좀 더 다정할 순 없을까. 뼛속까지 양반이라 그런 걸까. 예쁘기만 하면 다인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사실 나이가 어려서, 상처가 많아서라는 이유로 넘어가기엔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은 먹지 않았나. 장면마다 나이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나이를 정리해 봤다. 1부는 서희가 5살에 시작하여 16살에 하동을 떠나는 걸로 마무리가 된다.


 물론 사랑 많이 받고 자라면 성격이 더 부드럽고 유순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만 조준구의 아들 병수도 그렇게 썩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데다 몸까지 불편한데도 성격은 부드럽고 다정다감하지 않은가. 태어나서 유년기의 사건들로 서희가 그렇게 됐다고 마냥 면책권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토지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성격 설정이었을까. 그런데 그러고 보면 미스터선샤인에 고애신도 김희성을 대할 때는 고집스럽고 강하게 나갔지. 양반 태도의 기본일까. 그때는 아무래도 신분제 사회였으니까 지금처럼 다정한 걸 필요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 마저도  양반의 권위의식을 숭배하였다 하지 않았나.

최 참판 댁의 최치수를 하늘같이 생각하는 것은 그가 농부들에게 다정스런 지주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만하고 조금치의 접근도 불허하는 양반의 권위의식 때문에 숭배하는 것이다. 2권 264


 2부가 되고 자기의 기반이 없는 간도로 떠나게 되면 서희는 좀 더 철이 들고 다정해질까. 양반과 상민, 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흐려지면 양반의 권위의식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까.


 4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봉순이, 길상이, 그리고 서희의 미묘한 관계 변화이다.

-무조건 복종이면 복종이지 친근감을 갖는 것은 싫어한다. 동정하고 보호하는 기분을 가진다는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208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서...'
생각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을 했으면서도 길상이 야속하고 서희에게 대항하는 심사, 그러면 봉순의 마음은 심한 파도에 흔들리는 배처럼 흔들린다. 280

 굳건했던 신분제도 무너져가고 있었던 데다가 봉순이 자체도 원래 종이 아니었는데 서희는 성격이 지랄 맞지, 길상이는 서희만을 따르는 개인 듯. 봉순이가 어디 빠지는 외모도 아닌데 서희와 비교해 놓고 보니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느냐 그거 하나만 다를 뿐인데.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는 게 이다지도 힘이 들다니. 게다가 보면 길상이도 봉순이를 싫어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다들 서툴다는 첫사랑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마음이 동하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죄짓는 마음이 드는데. 결국 최악의 청혼까지 하고 만다. 진짜 보면서 아뿔싸 싶었다. 그동안 그렇게 기회가 많았는데 이렇게 결혼하자고 한다고? 누가 봐도 진심 없이 아끼는 아가씨를 위해 나를 붙잡는 것 같잖아. 나 같아도 안 따라가고 싶지. 


 1부에서 서희는 양반의 권위의식에 꽁꽁 사로잡혀있었다면 2부에서는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간도에서는 하동에서처럼 마냥 수발을 받을 수만은 없을 테지. 아무리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과 떠나지만 여기서나 땅의 주인이었지 거기에선 스스로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도, 땅의 주인도 아닌 서희. 


여전히 매일매일 일일 드라마처럼 읽고 있는데 어느덧 1부가 끝이 났다. 가끔은 못 읽고 지나가거나 읽을 분량을 넘어서서 읽을 때도 있지만 열심히 매일매일 따라 읽어가는 중. 




22. 인심도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요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으니 서희의 처지는 고립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서희가 안쓰럽다. 배울 만한 어른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문득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애신이랑 겹쳐 보인다. 시기도 그렇거니와 양반의 딸과 종이었던 유진초이처럼. 물론 배경이나 집안이 모두 똑같은 건 아니지만, 서희를 볼 때면 고애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만 지금 서희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떼쟁이, 고집쟁이처럼 더 보이는 면모가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 고애신만큼 인심을 쌓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일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61. 그러면 이 두 줄기를 타고 뻗어 난 들판, 그 들판을 메운 서민들은 어떠했을까. 한 마디로 이들은 모두 수구파다. 생리적으로 수구파다.

내가 가진 걸 지키고 싶은 곤 소시민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101.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강청댁 죽음을 연상하며 다른 또 하나의 죽음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럴 경우를 생각하지 않았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월선이의 생각의 흐름이 안타깝다.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라니. 용이는 이미 딴 여자랑 살림을 차렸는데 버리지도 떼쓰지도 못하고 마냥 바라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애매하게 부정하다니. 용이가 좀 더 과단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월선이는 행복했을까.


134. 세상에 밝고 처시에 능란하며 제반사에 형통하다 하여 우이에 있는 사람들이 도금된 자신들을 높이되 진토 속에 묻힌 옥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들이 옥의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를 설명해 주고 있는 걸지도.


201. 만나는 순간마다 새롭고 전부였고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고, 기다리는 동안의 몸서리쳐지던 고통은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 

바보. 스스로를 더 사랑했으면.


211. 포악스럽고 음험하고 의심 많고 교만한 서희, 그러나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제 나이를 넘어선 명석한 일면이 있었다. 본시 조숙했지만 그간 겪었던 불행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은 죽음들로 해서 그의 마음은 나이보다 늙었고 미친 듯이 노할 적에도 마음 바닥에는 사태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차가운 별당아씨 최서희. 음험하다니. 이 정도면 서희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건지. 주인공은 선하다는 편견을 깨야 하는데. 


280. 방이 차다. 길상이 봉순이 방에까지 군불을 넣어줄 리가 없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길상의 마음에 가슴이 떨려온다. 입술을 깨물어도 가슴이 떨려온다.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봉순이 방을 외면했을까. 사실 다정한 사람이라면 좋은 마음과 상관없이 군불을 넣어줄 수 있잖아. 그게 많이 힘든 것도 아닌데. 한 번 서운한 게 생기고 마음에 걸리는 게 생기면 모든 게 다 너무 하지. 


325. 흔히 살림을 이룩하는 집안에서는 그만큼 모든 것을 절용하기 때문에 하인살이가 어렵다는 것이요 살림이 빠지는 집안은 기왕 망하는 살림, 하고 쓰임새가 헤퍼지는 데서 하인 살이가 편하다고들 하는 데 마을도 그런 형세라고나 할까. 전보다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만 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주막에 술꾼들이 그칠 새 없이 끓는다.

요즘 우리 집 쓰임새가 헤퍼지는데, 혹시 망해가고 있는 걸까. 수입이 줄어들면 그만큼 쓰임새를 줄여야 하는데 쓰던 가닥을 줄이기는 쉽지가 않네. 괜히 내가 찔려.


362. 전신으로 살의를 인정하면서 증거를 잡히지 않으려는 침묵인 것이다.

치밀하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반항은 하지만 흠 잡히지 않으려고. 15살, 16살 즈음인가. 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안쓰럽다. 저 옆 동네 춘향이는 이맘때 몽룡이를 만나고, 줄리엣은 더 어린 나이에 로미오를 만나 알콩달콩 하는데 서희는 어쩔 건가. 마음에 따뜻함이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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