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조롱
런던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몇 개월간은 기대와 달리 영어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고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할 경우 나는 거의 문장을 완성시킬 수 없었다. 특히나 낯선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올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냥 손사래를 친 적도 있다. 그 사람이 같은 술집에서 축구를 보며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로 인해 나는 어떤 장소를 갈 때 미리 문장을 연습하거나 필요한 단어들을 공부해 가곤 했다. 은행이나 문구점, 병원, 이발소와 같은 곳을 가게 되면 친구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자주 쓰지 않는 단어들이 나를 많이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나의 영어 듣기 능력 향상을 도와주기 위해 말하기 속도를 조절해 주지 않는 영국 직원들 덕분에 그들과 나의 대화 시간은 항상 예정보다 단축되곤 했다. 하지만, 간혹 유별나게도 눈에 띄게 느리게 얘기해 주거나 종이에 적어가며 설명을 해주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는 다르게 소위 말하는 ‘쿨’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라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었다. 그전까지는 동네에 있는 친근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이발소에서 싼값에 머리를 자르곤 했다. 그 아저씨도 이민자였기에 왠지 모르게 나의 발걸음은 덜 무거웠다. 그 아저씨는 나의 영어 울렁증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구글맵에서 젊은 영국 이발사들이 운영하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이발소를 찾았다.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걸어가는 동안 예상되는 대화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당연히 물어볼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했다.
세 명의 이발사가 분주하게 이발을 하고 있었고 약 여섯 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의 이발사가 예약했냐고 물어봤을 때 나의 당황 지수는 급격히 상승했다. 예약해야 되는 줄 몰랐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놀랍지도 않게 반사적으로 YES라고 답하고 앉았다. 그리고 내가 유일한 아시아 사람이었고 이발사들은 고객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굉장한 수다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된 30여 분의 기다림 끝에 운명적으로 가장 수다쟁이고 장난꾸러기 같은 이발사에게 선택을 당하였다. 기본적인 대화의 시작인 안부를 묻는 것부터 우리의 불협화음은 시작됐던 것 같다. 쾌활하게 ‘오늘 하루 어때?’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수줍게 “응, 좋아”라고 답하고 그냥 앉았다. 왠지 모르게 옆에 앉아있는 고객들과 이발사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나의 자신감과 목소리는 계속 작아졌다. 준비한 문장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설명해달라고 했다. 나는 더 작아진 목소리와 더 압축된 문장으로 짧고 깔끔하게 잘라 달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아마 그는 내가 주고받는 대화가 어려운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뭐 크게 틀린 추측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추측은 그가 나를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에게 어느 정도 길이를 원하는지 확인을 받기 위해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고 가리키며 “으음? 음?” 이렇게 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몸의 대화를 시작했다. 글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분명한 건 유쾌하거나 기분 좋은 행동으로 받아들이기엔 지나친 요소가 다분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더욱더 뜨겁게 느껴졌고 피식하는 소리도 들렸다. 고객님과 소통하려는 친절함과 어리바리한 손님과 장난치는 조롱의 사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그걸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그저 최대한 빨리 이발을 마치고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어색한 몸의 대화를 몇 번 더 주고받으며 나의 검디검은 머리카락을 어느 정도 가지런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로 엄지 척을 마지막으로 교환하고 짧지만, 식은땀 나게 길었던 만남을 종료했다.
친절함이었을까? 그저 장난기 섞인 행동인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민자에 대한 조롱이었나? 인종차별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두 어달 후 다시 한번 도전했지만, 나의 영어가 장난기 가득한 젊은 현지인을 대적하기엔 한참 모자란다는 결론을 얻고 다시 동네의 후덕한 아저씨에게 돌아갔다. 그 아저씨는 여전히 대화보다는 이발에 집중하는 프로페셔널이었다.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 혹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니하오”로 인사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중국 여행객이 워낙 많기 때문에 중국어로 인사하는 것이 그들에겐 아시아인을 대할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라는 소수 의견을 피력해보곤 하지만 막상 나도 당하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친절함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겐 조롱이 될 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이고 인간관계는 더하다.
한국에서 우리는 어쩌면 당연하게 “Hi” 또는 “Hello”라고 모든 외국인에게 인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탈리아에서 왔건, 아르헨티나에서 왔건 말이다. 생각해볼 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