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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Nov 09. 2022

아이의 얼굴에 달이 뜨면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세대를 초월하는 카스타드 사랑 

아이 몸이 따끈하더니 밥도 통 먹질 않는다. 어디가 아픈 게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해열제를 급하게 하나 사는 데 7천 원, 이 가격만큼 다른 약도 하나 사기로 한다. '카스타드' 약이다. 마침 편의점에서 2갑을 사면 1갑 더 주는 2+1 행사를 하고 있다. 3박스를 사는 데 드는 돈이 해열제를 사는 비용과 같은 7천 원이다. 아이의 열이 아직 기준점을 넘지 않아 아이에게 먼저 먹일 약은 해열제보다는 카스타드다. 내 손에 들린 직사각형 연두색 박스를 발견한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없던 식욕도 단숨에 돌아오게 한다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가 우리 집에서는 카스타드다. 폭신폭신한 노란 빵은 나에게는 한 손에 가볍게 쥐어 쥐는 작은 크기이지만, 아이에게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 큰 크기다. 빵을 손에 든 아이의 얼굴과 입에 어느새 카스타드를 닮은 노랗고 동그란 달이 떴다. 이것에만 집중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카스타드를 바라보는 두 눈에서 느껴진다.


우리나라 제과업계를 이끌어가는 오리온과 롯데는 철천지원수 관계다. 1990년대 초코파이 상표권 등록을 두고 벌어진 분쟁 때문이다. 초코파이의 후발주자인 롯데는 초코파이가 보통명사라고 주장했고, 오리온은 원조는 자사라고 했다. 재판부는 롯데의 손을 들어줬지만, 오리온 초코파이가 타사보다 탁월하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에 카스타드는 롯데가 원조다. 1986년에 롯데에서 먼저 나온 후, 오리온에서 2004년에 같은 제품을 출시했다. 이를 두고 오리온의 복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리온 카스타드 포장지에는 '비교해 주세요'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어 더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카스타드는 초코파이만큼 두 회사 간의 맛 차이가 극명하지는 않다. 다만 편의점에는 한 갑에 6개들이인 롯데가 더 많이 보여 나는 롯데 파다. 


카스타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제품명이 '카스타드케잌'(현재는 케이크가 표준어이지만, 출시했을 때 제품명은 케잌이었다)이었다. 다른 갑 과자류는 과자라고 하는데, 카스타드는 꼭 빵이라고 부른다. 카스타드가 이름 붙여진 이유는 카스텔라 빵에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계란의 비린 맛이 먼저 들어와서인데, 같이 살던 친할머니는 종종 즐기셨다. 아직도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카스타드는 인기 간식이다. 인터넷에 요양원 간식으로 검색하면 카스타드가 상단에 뜨는 걸 보니, 여전히 카스타드는 어르신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요양원에 가면 한 병실에 여섯 어르신 정도 계시는데, 할머니들마다 개인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서랍장이 하나씩 배정된다. 거기에 본인의 취향에 맞게 입이 심심할 때 드시는 간식거리들이 있는데, 한 병실에 한 서랍 정도는 카스타드가 있을 정도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요양원에 한동안 머무셨다. 서울에 있던 나는 고향에 갈 때면 집 근처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뵈러 가곤 했다. 요양원에 가기 전에 근처 마트에 들러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간식을 이것저것 샀다. 베지밀, 상투과자, 양갱이 할머니의 주 간식이었다.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면회를 오는 엄마에게 사람들과 같이 먹을 만한 간식거리도 부탁했다. 함께 지내는 다른 할머니랑 나눠먹고 요양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용도였다. 카스타드가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사가면 할머니는 꼭 나에게 몇 개를 챙겨주시곤 했다. 나는 그 과자를 안 먹는다고, 행여나 주실까 봐 손을 뒤로 감췄다. 본인이 좋아하니 손녀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미셨을 텐데, 늘 나는 그 손을 무안하게 하고서는 작별을 고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할머니 간식을 샀던 요양원 주변의 마트를 우연히 지나쳤던 적이 있다. 마트는 그대로인데 난 그곳에서 더 이상 간식을 사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 더 많은 간식을 사다드릴걸, 주시는 간식을 보면서 맛있겠다고 웃으면 받아올걸, 나는 이런 거 안 먹는다고 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까.


카스타드 1개를 다 먹고 2개째를 먹던 아이가 배가 찼는지 자신이 먹던 카스타드를 내 입에 넣어주려고 한다.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다가 대체 어떤 맛이길래 할머니나 아이가 좋아하나 싶어서 카스타드를 먹어본다. 카스타드 속 크림이 빵집에서 사 먹는 슈크림 같기도 하고, 빵도 생각보다 촉촉한 게 맛이 제법이다. 오래 팔리는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싶다. 할머니가 떠나가시고 한동안 카스타드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아이 때문에 최근에 카스타드가 어디에 있나 하고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눈을 밝히며 연두색 과자 갑을 찾는 요즘이다. 여전히 카스타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 마음의 눈이 카스타드를 봤다가 안 봤다가 했겠지.


어제도 자려고 누웠다가 저녁을 조금 먹어서인지 아이가 잠자려다 말고 부엌으로 내 손을 이끈다. 간식 창고를 열더니 나에게 ‘이거’라면서 연두색 갑을 가리킨다. 우유와 함께 2개를 먹고는 이내 잠에 든다. 편의점에서 산 카스타드와 함께 산 해열제는 아직도 뜯지 않았지만, 카스타드 3갑은 1주일 만에 24개를 다 비웠다. 


이번 감기도 카스타드와 이렇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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