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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6. 2021

당신에게 유럽은 무엇인가요? 저는 백조입니다.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체코의 프라하에서 그리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2014년 서른 넘어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했다. 처음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 독일 뮌헨, 스위스 루체른,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로 끝나는 여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도착한 영국은 내 인생 첫 유럽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예쁘고 감동이었다. 겨우 100미터 걸어가면서 사진을 몇 장씩이나 찍어댔던지... 블랙, 골드 앤 플라워가 인상적이었던 영국 런던의 모든 풍경과 물건 그리고 공기 하나하나에 내 온몸의 감각이 반응했다. 너무 좋아! 역시 유럽 최고야!




사실 여자들의 유럽 로망은 파리가 아닌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파리였다. 파리. 이름 하나로 모든 낭만이 넘쳐흐르는 그 도시 말이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도착한 파리 북역에는 백인 반, 흑인 반이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면 베레모를 쓰고 바게트를 든 예쁜 파리지엔느 언니들 만날 생각만 하고 있었는 데, 흑인을 이렇게나 많이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인종차별 아니고 정말 파리에 흑인이 더 많이 있어 신기했던 거예요.^^) 그리고 북역에선 어찌나 찌린내가 나던지... 아직도 돈 내고 들어갔던 샛노란 화장실의 찌린내가 화장실에서 나와서도 역 전체에 퍼져있던 기억이 난다. 역에서 나가면 괜찮겠지 하고 나갔지만 또 한 번 실망이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파리의 건물들이 보기엔 딱히 별로 예쁘지 않았다. 음,, 파리가 생각보다 별로구나 하면서 그래도 도착했으니 기념사진을 찍자 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었더니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눈으로 보기엔 생각보다 별로 였던 파리의 그 동네 배경이 나의 사진 속에서도 그동안 내가 사진으로 봐 왔던 근사한 파리 배경이 되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아, 파리가 사진빨이었구나 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나의 오!만!이었다. 너무 실망이었던 파리의 첫인상과 다르게 파리를 여행하면 할수록 파리의 진가에 매혹되었다. 오~ 샹젤리제 거리, 오페라 하우스, 몽마르트르 언덕, 마레 지구, 센강, 에펠탑. 파리는 파리였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멋지고 매혹적이고 온 세상의 좋은 수식어 다 가져다 붙여도 아깝지 않은 도시였다.




독일로 갔다. 응, 또 유럽 건물이구나, 여긴 좀 건물들이 뾰족뾰족 딱딱하네. 겨우 일주일 런던과 파리를 여행해 놓고는 유럽을 다 아는 사람 마냥 독일을 평가했다. 고맙게도 여긴 좀 물가가 현실적이네, 아디다스와 버켄스탁을 사자. 소시지와 맥주를 먹자. 이제는 뭐, 풍경은 그냥 크게 눈에 안 들어오고 쇼핑과 맛집 탐방에만 열중했다. 학센과 소시지는 정말 환상의 맛이면서 다른 유럽에 비해 가격도 착했다. 사실 맥주를 못 마시는 알쓰라 진정한 독일의 매력은 만나지 못했다. 마음이 쓰린다. 인생의 큰 낙 하나를 모르고 살아서 더 여행이 주는 낙에 빠져 사나 보다.




드디어 동화의 나라 스위스를 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를 도는데 또, 유럽풍의 건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유럽풍 건물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으악, 되새겨 생각해보는 나의 여행자의 태도 정말 밥맛이었구나.) 빈사의 사자상 앞에서 친구가 이야기해주는 스위스 용병 이야기를 들으며 잠깐 슬펐다. 그리고 바로 앞에 빨간색이 예쁘던 식당에서 가격 대비 맛은 쏘쏘인 퐁듀를 먹으며 그렇게 루체른 구경을 했다. 작은 동네였지만 돌고 돌다 보니 다리가 아파 쉴 겸 호숫가로 갔다. 원래 감동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더 크게 일어나지 않는가! 오 마이 갓, 세상에 새하얗고 통통하고 우아한 백조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손도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말이다. 백조는 누가 매일 관리를 해주는 마냥 너무 깨끗했다. 새하얀 깃털에선 윤기가 좌르르 흘렀고 살도 포동 하게 쪄서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백조가 사람들에게 빵을 얻어먹으며 사람들과 섞여 있었다. 동화 속의 백조를 눈앞에서 바로 보고 있으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살짝은 지루해지기 했던 유럽의 풍경이 백조와 함께 다시 생동감 있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날의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서 백조를 보면 항상 그 날의 루체른 호숫가가 생각이 난다. 그 순간으로 인해 나는 다시 유럽과 사랑에 빠졌다. 






시간이 흐르고 4년 만에 다시 유럽을 찾았다. 2018년 프라하 여행 중이었다.. 블타바 강의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에 갔다. 선착장 아래 백조가 두 마리 있었다. 예전 루체른의 백조가 빵을 먹던 기억이 났다. 백조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아이의 간식으로 가지고 있던 빵을 던져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강어귀 반대편에 있던 백조 친구들이 주르르 우리를 향해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져 오는 것이 아닌가. 환상적이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발레 '백조의 호수'의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장면의 진정한 실사판을 보는 듯한 감동이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묘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했던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블타바 강의 백조들의 뛰어난 후각과 식탐 덕분에 우리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내가 글로 제대로 묘사를 못해 안타까운 순간이다. 지금도 상상만 해도 너무 벅차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야생동물에게 인간의 먹이를 주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정말 반성했다. 예전의 루체른의 백조에 빵을 주던 사람들도 동네 주민이 아닌 백조에게 먹이를 주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모르는 나와 같은 관광객이었나 보다.)  





말로다 표현 못할 그날의 백조와의 순간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감사하게도 백조가 있다. 모든 강이나 호수에 있는 것은 아닌데, 한번 백조를 만나게 된 곳은 언제든 다시 찾아도 백조가 있다. 백조도 각자 가족들의 보금자리가 정해져 있나 보다. 백조를 만나면 너무 반갑지만 인간의 먹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맘과 다르게 우리 동네 백조들은 사람이 오니 먹을 것을 주려나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주지 않자 무서운 표정과 소리로 나에게 가아아아아왁! 소리쳤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생긴 백조에게 그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백조에게 성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너무 뿌듯했다. 백조에게 욕은 얻어먹었지만 백조의 기분을 알아챌 정도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며 찬찬히 생각해보니 앞으로는 백조가 화나지 않게 백조에게 해가 되지 않는 먹잇감을 들고 찾아가 봐야겠다. 백조에게 칭찬받고 싶기 때문이다. 백조야, 나는 네가 너무 좋아.




백조의 새끼는 정말 회색빛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감개가 무량했다.














브로츠와프 근교 모즈나 성에서 만난 윤슬과 백조,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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