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몰디브에서 제주도이길 간절히 바랐던 사연
매년 결혼기념일 그대의 생일 몰디브 해변가에 앉아서 오로지 둘만의 축제 달빛의 노래를 함께하길...♬
어린 시절부터, 나는 참 많은 가수들과 대중가요를 좋아했다. 그중 NRG의 노래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좋아했다. 멜로디도 너무 좋고 제목과 가사도 너무 예뻤던 그 노래... 그중 저 부분에서 몰디브 해변이라는 말은 그 앞의 결혼기념일이라는 가사와 함께 나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고, 신혼 여행지를 고민하게 된 시점부터 기억 속에 잠겨 있던 이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 여행지는 몰디브로 결정되었다. 사실, 그때 하와이도 아주 가고 싶었지만, 2011년 봄 일본에 큰 지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지진으로 생긴 커다란 쓰레기 섬이 가을에 하와이에 도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서, 하와이는 10년 후에 가자며 신혼여행지를 몰디브로 정하게 되었다. 아, 올해가 그 10년 후인데, 코로나로 하와이는 못 가게 되었다. 과연 우린 몇 주년에 하와이를 갈 수 있을까?
몰디브 가는 길에 싱가포르 가서 칠리 크랩도 먹으면 너무 좋겠다.
신혼여행은 주로 직항을 많이 탄다. 결혼식 후 바로 가거나 그 다음날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스케줄이기에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직항으로 신혼여행을 간다. 그런데 스탑 오버의 재미와 실속을 알게 된 우리는 가서 휴양이 전부인 몰디브만 가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싱가포르가 크지 않으니 스탑 오버하여 유명한 칠리크랩도 먹고 오고 그 예쁘다던 창이 공항도 구경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때 체력이 남아나는 건장한 20대 후반 여자, 30대 초반 남자였기 때문에 싱가포르도 추가로 구경할 수 있고 오히려 비행기 값도 싼 경유편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리 언니가 임신하고 그렇게 초밥을 당겨하더라
결혼식을 며칠 앞둔 11월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같이 백화점에서 신나게 아이쇼핑을 한 후 배가 고파진 우리는 식품관에서 무엇을 먹을지 골랐다.
"나 요즘 그렇게 초밥이 좋더라."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엇, 우리 언니도 임신하고 그렇게 초밥을 당겨하더라."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복선이었다. 그 이야기가 왠지 마음에 꽂히고 설마 하는 마음에 해본 임신 테스트기에선 두줄이 나왔다. 결혼식이 곧 이었기에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산부인과에 가서 정확한 결과를 들은 후 주위에 알리려고, 이 사실은 예비 신랑과 나만의 비밀이었다.
새하얀 망토 속 11월의 공주
내가 11월에 결혼한 이유는 새하얀 망토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 해에 친척 언니 결혼식에 갔다. 친척 언니는 이동할 때 드레스 위에 새하얀 털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 망토 두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다른 친구들은 5월의 신부를 꿈꿀 때, 나는 혼자 겨울의 신부를 꿈꿨고, 겨울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은 한번 울면 끝을 볼 때까지 나는 나의 눈물 스타일 때문에, 울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결혼식 중에는 엄마, 아빠와 심지어 동생과 친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나는 결혼식 내내 빵긋빵긋 웃는 신부가 되어버렸다. 이름부터 아름다운 시크릿 가든 홀에서 새하얀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빵긋 빵긋 웃어 대며 공주같이 예뻤던(베테랑 메이크업 아티스트님의 신부 화장 덕분) 나는 무사히 결혼식을 잘 끝내고,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몰디브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가는 비행기에서 나의 컨디션은 급속히 나빠졌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스탑 오버로 싱가포르 구경 나갈 여력이 없고 그냥 쉬고만 싶었다. 칠리크랩을 포기하고 공항 카페에 앉아 쉬다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시켰다. 그중에 페타 치즈가 있는 샐러드가 있었는데, 큐브 모양의 치즈가 맛있어 보여서 한입 먹었다가 비위가 제대로 상해버렸다.(웬만한 음식은 가리는 거 없는 나인데 그 날 이후로 페타 치즈는 정말 못 먹겠다.) 우웩,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모든 냄새가 거슬리고 속은 뒤집어졌다. 큰일이다. 앞으로도 비행기를 더 타야 하는데.... 화장은 지웠지만 아직은 스프레이의 힘으로 예쁘게 남아있던 나의 머리도 점점 나의 식은땀으로 인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점점 예쁜 신부에서 초췌한 멀미 환자로 바뀌어 갔다. 몰디브 공항에서 나의 상황은 더 최악이 되어 우리의 리조트까지 이동하는 경비행기에서는 계속 입에 구토용 봉투를 달고 있었다. 미안해... 남편... 정말 미안해... 한 번뿐일 신혼여행을 이렇게 망쳐서 미안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신혼 여행지는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파아란 하늘, 쪽빛 바다, 반짝이던 백사장, 이국적인 야자수 그런 아름다운 리조트를 뒤로하고 첫날은 그냥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도착만 하면 씻은 듯이 나을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정말 아파야만 내던 소리 '아~~~~~'를 입에 달고 있었다. 그래야만 그나마 견딜만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뱃속의 작은 생명체 때문인 것 같다. 그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별생각 없이 탄 비행기에서 우리 아가는 너무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며칠 뒤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타고 왔던 비행기 루트를 그대로 다시 타야 한다는 것을... 정말 두려웠다. 제발 이곳이 몰디브가 아닌 제주도이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둘째 날부터는 일어났다. 신혼여행에 들인 돈도 생각이 나고 평생에 한번뿐인 신혼여행에서 이렇게 누워만 있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거기다 마사지도 받고 콜라도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여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고 엄청나게 큰 거북이도 보았다. 거북이를 보는 순간 우리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일 거라 직감했는데, 정말 우리는 나중에 아들(태명: 유러비)을 낳았다. 다행히 그 후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는 신혼여행을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몰디브 그곳은 정말 지상낙원이었고 신혼여행은 정말 행복하고 달콤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들으며 꿈꾸었던 몰디브 해변가에 앉아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오로지 둘만의 축제 달빛의 노래도 함께했다.
하루하루 즐겁게 지낼수록 여기를 떠나기가 너무 싫었다. 하나는 너무 아름답고 좋은 이 곳을 떠나기 싫었고, 또 다른 이유는 다시 한국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몰디브가 제발 비행기 한 번만 타면 되는 제주도이기를 간절히 꿈꿔보았지만 그 꿈은 헛 꿈이었고 시간은 흘렀다. 우리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쉬고 놀면서 몸이 많이 회복된 나는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기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처참하게 깨졌다. 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하드코어였다. 이번에는 첫 비행기에서부터 내내 입에 구토용 봉투를 달고 있었다. 나는 냄새를 보는 소녀처럼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눈에 보이는 듯 민감해졌고, 그 모든 냄새는 나의 비위를 너무 상하게 했다. 저번 창이 공항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 창이 공항에서는 더 상태가 안 좋았다. 나는 너무 힘들어 남편과 창이공항 의무실(?)까지 찾아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지막 비행기에서도 식은땀은 계속 났고, 계속 토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챙기느라 매우 고생했다. 우리는 그렇게 힘들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나의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이 공항까지 우리를 데리러 오셨고, 자동차 뒷좌석에 두꺼운 이불을 가져와 주셔서 편하게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거지가 돼서 돌아왔잖아!
친정집에 도착하니 나의 여동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나머지 특별휴가 내내 잘 쉬었더니, 휴가 후 멀쩡한 모습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안도감과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는 정신력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얻은 회복이었다.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간 후 여동생이 웃으며 한마디 해주었다.
"언니, 그 날 진짜 거지가 들어오는 줄 알았잖아."
동생 말이 맞다. 그날 나에게선 식은땀과 토 냄새가 진동했고, 얼굴과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있었다. 낸들 알았겠나, 신혼여행에서 거지꼴로 돌아올 줄이야...
일상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역시나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 '임신'이었다. 사실 비행기에서 고생하면서 이것이 입덧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고, 임신 테스트기로는 임신을 확인했지만 무지하고도 무모하게 신혼여행을 간 걸 후회하면서 혹시라도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너무 감사하게도 건강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아들은 엄청난 존재감으로 나를 압도했다.
몰디브로 오고 가던 그 날의 고생들은 그 후, 나에게 펼쳐진 입덧 지옥의 웅장한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