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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Apr 08. 2024

스튜디오 계약을 왜 해가지고

생후 115일 성장 앨범 따위

2024.03.21(목)


엄마아빠는 스튜디오 촬영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에 역부족이라 생각해 결혼할 때도 스튜디오 촬영은 빼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반셀프로 촬영했단다. 만삭 촬영도 셀프 사진관에서 둘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찍었고. 그런데 호기심에 조리원 연계 스튜디오로 만삭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마지막에 아빠가 남겨준 감동적인 편지를 담아 업체에서 제작한 영상을 보고 뭔가 울컥해서 네 성장 앨범까지 결제해 버렸다는 거 아니니. 엄마도 임신 후기 호르몬의 노예(?)였던 걸까.


50일 촬영을 하러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스튜디오에서 여러 벌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딸랑이와 카메라 셔터 소리에 잔뜩 경직되고 혼란스러워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이 계약을 왜 했을까' 땅을 치고 후회했었는데 오늘은 열배 아니 백배는 더 후회했다. 네가 백일도 채 되기 전에 외할머니 얼굴을 보고 울 때 낯가림이 시작됐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 제대로 낯을 가리더라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안아서 진정시킬 수 밖에 없었지 뭐야.


그 모습을 보더니 사진사가 “전형적으로 손을 많이 탄 아기 같네요. 평소 안아 키우시나 봐요”라고 하는데 순간 기분이 팍 상하더구나. 우리 딸이 바운서, 러그, 의자 위에서 혼자 얼마나 의젓하게 잘 앉아있는데 저렇게 함부로 이야기하다니. 그 이후에도 “빽빽 우는 소리가 너 엄청 성질 있어 보인다 야”, “외출은 많이 안 하세요? 혹시 아기띠 할 때 앞보기는 안하세요?”, “(우는 아이에게) 엄마 화났어~”라며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쏟아내는데 엄마가 표정 관리가 안 돼 아빠 어깨 뒤에 숨어버렸다.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이가 밖에 나갈 일이 얼마나 많고 나가더라도 목을 아직 가누지 못하니 당연히 뒤보기를 하고 나가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리고 엄마는 네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그런 엄마가 화났다고 표현하다니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 아가라지만 아가에게 엄마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막말을 한다는 생각에 자꾸 불쾌해지더라.


모든 스튜디오 사진관이 그렇지 않겠지만 스튜디오 촬영은 짜여진 틀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그 틀에 맞지 않으면 그게 마치 잘못된 일인 것 마냥 대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톤톤아. 남들보다 낯가림이 일찍 왔다고 해서 이상한 게 절대 아니란다. 낯가림은 시력도 잘 발달하고 주 양육자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어 엄마 아빠를 인지할 줄도 알게 되면서 그 이외의 사람을 볼 때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 중 하나란다. 우리 톤톤이가 아주 잘 크고 있다는 뜻이지.


엄마가 원하는 건 네가 편안해하는 환경을 고려해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어주는 거였는데 그래서 더더욱 스튜디오 계약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지. 얼마 전 우연히 인스타에서 알게 된 홈 스냅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러면 네가 편안해하는 집에서 좀 더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스튜디오 계약을 취소하고 홈 스냅을 신청할지 고민 중이다. 에효.


이렇게 잘 웃는다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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