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
아시다시피 이 영상이 엄청 화제가 되고 있죠. 뉴진스의 도쿄돔 콘서트 중 하니가 부른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산호초인데요. 이 영상이 한일 양국의 X의 트렌드에 드는 등 SNS 상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26일, 27일에는 열린 뉴진스의 도쿄돔 팬미팅에서 연출된 장면인데, 해외 아티스트 중에선 사상 최고 속도의로 도쿄돔 단독 공연을 개최하며, 9만 명 이상의 팬을 동원하는 등 이미 뉴진스의 인기가 증명되었죠.
보더 티셔츠에, 화이트의 스커트라는 마린룩 여기에 검은 단발는, 마츠다세이코가 상징하는 일본 쇼와 시대 아이돌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푸른산호초가 일본인들에게 갖는 상징성
마츠다 세이코는 80년대 일본 아이돌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일본은 버블시대의 경제적 번영기를 누리며 호화로운 시기였는데요. 서구의 문화도 마구 유입되면서, 덕분에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은 나날이 높아져갔습니다.
사람들이 먹고사는게 여유로워지면 문화생활이나 여가시간에 눈을 돌리잖아요? 버블 시대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일본 음반사들은 해외의 프로듀서와 최고급 장비를 도입했고, 이런 배경속에서 마츠다 세이코는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푸른산호초는 그런 마츠다 세이코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초기의 대표곡인데요.
오리콘 첫등장은 87위였지만 이 후 29위→22위→17위→12위 등 계속 순위가 올라갔고, 발매 2개월 후엔 2위를 획득했습니다. 순위의 변동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노래를 통해 차근차근 인지도를 높인게 느껴지죠.
이 노래를 대표하는 또 유명한 영상이 있어요, ‘더·베스트 텐’이란 일본 유명 방송이 있었는데, 이 방송 당일 마츠다는 삿포로에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바로 라이브로 푸른 산호초를 부른적이 있습니다.
푸른산호초는 80년 7월에 발매된 곡이거든요. 공항 활주로에서 곧바로 노래하기 위해서 8개 관계부처의 허락을 받아야했고 라이브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비행기가 착륙후 활주로를 한바퀴 돌았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영향력이었는지 느껴지시죠?)
푸른산호초로 같은 해 마츠다 세이코는 일본 연말가요제인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했고,
제22회 일본 레코드 대상·신인상, 제11회 일본가요대상 방송음악 신인상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 때 그녀의 인기는 전국을 강타해 노래 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함께 유행해요. 대표적인게 바로 이 머리 일명 '세이코짱 컷'으로 불리우는 헤어스타일인데, 당시 여자 아이들이 모두 따라했고,
아직도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세이코짱 커트는 시대적 배경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장합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터치의 여주인공 역시 세이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알려졌죠.
마츠다 세이코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바로 실력,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달콤 시원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말이 바로 ‘캔디 보이스'. 사랑스런 캔디 보이스로 일본을 녹였는데,
종합하면 일본인들이 항상 돌아가고 싶어하는 버블시대 + 그리고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돌의 최고 히트곡이 푸른산호초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단지, 유명한 옛날 일본 아이돌의 곡 그 이상의 상징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간파하듯 하니는 청초한 모습과 캔디보이스로 대중을 사로잡았는데요.
사실 이번 공연에서 하니 외에도 민지는 Vaundy의 오도리코 '무희'를, 혜인은 시티팝의 대표곡이라고 알려진 타케우치 마리야의 '플라스틱 러브'를 커버했어요. 두 곡 모두 최근 몇년간 일본을 그리고 온라인을 타고 일본을 넘어 여러 나라들에서도 유행했던 곡입니다. 푸른산호초 역시도, 유튜브를 통해 근 몇년간 바이럴 되기도 했었는데요. 일본의 중심에서 갓 일본 데뷔를 한 뉴진스가 요즘 잘나가는 바운디의 노래나, 40여년전 히트한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 그리고 시티팝이란 장르(?)를 상징하는 타케우치 마리아의 곡을 커버한 것은
기획에 있어 영리함의 정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쿄돔 무대에서는 일본 노래를 커버하며 일본 팬들에게 정성을 보였지만, 사실 뉴진스의 일본 데뷔를 보면 묘하게 과거 다른 가수들보다는 일본을 덜 의식한다고 보여질수도 있어요.
지금까지의 업계의 상식을 바꾸다
일본 데뷔를 하자마자 폭풍 인기를 끌며 일본 데뷔곡인 Supernatural은 오리콘 데일리 싱글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사실 뉴진스는 이미 작년에 일본 서머소닉에 참가하거나 홍백가합전에 참가한 이력이 있거든요.
여기서, 통상 말하는 '일본 데뷔'라는 개념이 뭔지 의문이 들죠. 보통 ‘일본데뷔’라는 말은 주로 K-POP 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인데, 기본적으로는 K-POP 아티스트가 일본어 곡을 발표하고, 일본 활동을 정식으로 시작하는 타이밍에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2013년 6월에 한국에서 데뷔한 BTS는 2014년 6월에 일본어 버전의 'No More Dream'을 발매하며 일본 데뷔를 선언했고, LESSERAFIM 역시 2022년 말 홍백가합전에 출전 후 이듬해 1월에 Fearless의 일본어 버전을 선행해서 선보이며 일본 데뷔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일본어버전의 곡을 발매하는 것이 ‘일본 데뷔’의 암묵적인 선행조건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New Jeans는 이 업계의 상식을 깨고 있다는 것입니다. New Jeans의 '일본 데뷔' 곡은 'Supernatural'과 'Right now', 두 곡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이 곡들, 한국어-일어-영어 3개 언어로 쓰여졌는데요, 당초 'Right now'가 6월 17일 선공개되었을 때, 일본 언론들은 '일본어곡 'Right Now' 선공개'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보면 3개 국어로 가사가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상 일본 데뷔 곡들에 붙은 Japanese Ver등의 표기도 없는데 거꾸로 보면 뉴진스의 곡들은 어떤 언어로 부르는지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란 메시지가 담겨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게 New Jeans의 인기는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왔거든요. 기본적으로 모두 한국어 곡에 영어 비중이 있는편인데, 지금까지 미국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데뷔 1년 만에 미국의 음악 축제 '롤라팔루자 시카고'에서 7만 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어 곡으로 이미 일본의 국민 연말가요제인 홍백가합전에 출연했었는데요. 굳이 Jap.ver을 내지 않아도 언어 장벽을 뛰어넘을 만큼, 뉴진스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매력의 본질에 대한 해답은 한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New Jeans는 왜 일본에서 먹힐까? 데뷔 후 바로 도쿄 돔 공연을 이뤄낸 그룹의 매력”이란 제목의 기사인데, 여기에 무려 1800여개의 댓글이 달립니다. 기사에선
“기존 K-POP 걸그룹들은 걸크러시가 주였고, 그 외에는 청순계나 페미닌한 계통이 대부분이었지만”
뉴진스는 이런 트렌드와는 다른 내추럴한 무드를 곡과 비주얼로 내세우며, 지금까지의 걸그룹의 어느 계통에도 속하지 않는 컬러로 새로운 조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데요.
그리고 1.4만개의 공감을 받은 댓글이 바로
“비슷비슷한 댄스 보컬 유닛만 있어서 이제 질린다. 일본에서도 K-pop을 동경하는 그룹이 많아져서, 일본 그룹인지 한국 그룹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同じようなダンスボーカルユニットばっかりでもう飽きたよ。
日本でもK-popに憧れてそうなグループが増えてきて、日本のグループなのか韓国のグループなのかも分からなくなってきた"
기존 K-POP 걸그룹들은 일사불란한 군무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이젠 일본 내에서도 KPOP 그룹을 표방해 여러 그룹이 나왔는데, 마치 친구들과 함께 흥얼거리듯한 자연스러운 무드가 뉴진스만의 차별성을 만들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는 철저히 민희진 대표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민희진 대표는 “ 컨셉을 위한 컨셉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그룹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기존 스타일과의 차별화 측면에서도 옳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적 있는데요.
시장 분석을 어떻게 하냔 질문엔, “시장에 관한 자료를 모아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통찰력을 신뢰합니다. 시장에 이미 드러난 시그널을 모아 분석하고 반영하는 것은 오히려 더딘 행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합니다. 치밀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고객 맞춤형으로 그룹을 프로듀싱하는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기존의 KPOP 걸그룹들과는 차별성을 보였고 이는 기존의 공고한 KPOP 팬층 뿐만 아니라 여러 층위의 팬들을 흡수했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안늙는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가장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은 영원히 남는다고 합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산호초를 선보이며 버블시대의 일본인들의 감성을 불러일으킨 하니,
그리고 자연스런 무드를 기반으로 중장년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뉴진스의 여러 곡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시장을 분석하고 곡을 프로듀싱하기 보단, 인간의 본질을 파악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층에서 열렬히 호응을 받은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