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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성 폭주족들의 민낯

무단결석은 린치로 대응하는 폭주족들의 (똥)군기

by 나마비루

여성 폭주족의 시작

폭주족. 7-80년대 일본의 도로를 풍미하며, 사회현상이자 지금은 만화속 유물과 같은 존재로도 자리잡은 이들. 그런데 여러분 폭주족 뿐만 아니라 여성 폭주족을 일컫는 레이디스 역시 일본에서 사회 이슈가 되었던 사실 알고 계시나요?

스크린샷 2024-12-26 오후 11.40.18.png 레이디스/틴즈로드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전반에 걸쳐,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특히 일본의 지방 등에서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여성폭주족들, 이들을 가리켜 레이디스라고 통칭합니다.


이런 레이디스들의 세계관을 다루며, 각 연합들의 총장들을 다루던 잡지도 있었습니다. 무려 발행 부수가 약 18만 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 잡지는 당시 오갈 데 없는 불량 소녀들의 도피처가 됐고, 여기에 실리는 게 그들의 목표가 되기도 했었죠. 지금도 구글링을 하면 여러 사진들이 나오는 바로 잡지 틴즈로드의 이야기인데요. 여기에 나온 여성 폭주족들은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는 스타덤에 오르곤 했었습니다.

이 폐쇄적인 세계에서도 나름의 아이돌 스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틴즈로드에 나왔다 하면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일반인에게도 그들의 이름을 알린 레이디스가 바로 스케렌이었습니다.


최대 여성 폭주족, 스케렌의 탄생


1990년 여름의 끝 무렵, 더위도 한풀 꺾이나 하던 어느날. 틴즈 로드 편집부에 쩌렁쩌렁 전화벨이 울립니다. 자기들을 일본 제일의 레이디스라고 소개한 스케렌의 강렬한 클레임 전화였죠. 전화속 인물은 그동안 틴즈 로드가 취재한 레이디스들은 박력도 없는 가짜 뿐이다라면서, 가짜 레이디스만 게재하지말고, 격이 다른 미카와엔슈 스케반렌고 통칭 스케렌을 취재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전화 속 말투는 거의 시비조에 가까웠죠.ㅎㅎ


그리고, 전화기 넘어에는 스케렌의 초대 총장 노부코가 있었습니다. 노부코는 스케렌은 100명 이상의 멤버가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요.

스크린샷 2024-12-26 오후 11.39.44.png 스케렌으 노부코/틴즈로드


노부코의 말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자신만만한 말투에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틴즈로드는 취재에 나섭니다. 그렇게 약속장소인 토요하시의 역에 다다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는데....


약속한 토요하시 역 서쪽 출구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알록달록한 특공복을 입은 소녀들이 속속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편집부는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고 말했는데요.


그리고 포스가 남다른 여성 한명이 이들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로 그녀가 총장 노부코였죠. 그녀는 지난 주에 몇 명이 잡혀서 오늘은 이것밖에 모이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대략 40명 정도는 되는 규모였고, 스케렌 소녀들은 모두 직립부동하며 노부코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스케렌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화려한 특공복을 입었지만 근본은 속이지 못했는지 소녀들은 카메라를 향해 연신 브이 사인을 하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디선가 나타난 스케렌의 OB들은 웃는 얼굴 금지라며 군기를 잡기 시작했죠. 이렇게 틴즈로드의 지면을 장식한 스케렌은 순싯간에 화제거리가 되었고, 인기에 힘입어 당시 여러차례 잡지를 뛰어넘어 미디어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크린샷 2024-12-26 오후 11.41.47.png 그 시절 틴즈로드

도대체 이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스케렌은 도요하시, 도요타, 하마마츠 등 각 지부가 있었는데요. 한 일본인은 이걸보며 일본인은 조직생활 끔찍하게도 좋아하는구나 디스하기도 했지만...아무튼 이 지부들의 주 활동 중 하나는 바로 다치반이었습니다.

'다치반'이란 역앞에서 갈색 머리로 염색하거나 거슬리는 차림새를 한 소녀들을 단속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역사를 나오는 소녀들의 머리가 갈색이거나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하면 스케렌은 다가가 스케렌 영입을 유도하는데요. 스케렌 영입에 실패하면 바로 태세전환해, 머리를 물들이라고 소리치거나, 제대로 옷을 입고 다니라며 윽박지르곤 했죠. 이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이 말도 안되는 집단 행위를 하는게 이들의 업무중 하나였습니다.


요상한 단속이었지만, 스케렌은 나름 조직적으로 행동했고, 내부 규율도 강했는데요. 이 무렵 회비는 1000엔을 납부해야했고, 무단결석은 린치로 대응. 선배의 담배는 5초 이내에 붙여야 하고, 대답은 한번만 하는 등 똥군기가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들끼리 스케렌 17조라는 규정도 만들었는데요.

스크린샷 2024-12-28 오전 12.29.04.png 포스작렬 레이디스

스케렌에 들기 위해서는 이력서도 따로 써야했었죠. 총장 노부코는 이들의 이력서를 파일에 차곡차곡 모아놓고는 했는데, 취미나 특기 지원동기 등을 채워야했습니다. 이 이력서도 트렌드가 있어서 폭주족의 시대였던 당시에는 취미에 ‘싸움’ ‘폭주’ 등이 많았다면 그 이후에는 취미란에 ‘테니스’ ‘음악’ 등으로 써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스크린샷 2024-12-26 오후 11.40.00.png

간부회의도 진행했는데, 1992년 5월호의 틴즈로드는 스케렌 토요카와 지부, 간부회 밀착이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회의는 무려 가라오케 박스를 대절해서 이뤄졌는데, 간부회의에서는 다치반의 활동 내역을 보고하는게 주였다고 합니다.


세력의 확대 그 뒤 시련

이렇게만 보면 그저 길거리 시민들에게 시비를 걸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는 모임같지만 사실 레이디스의 많은 멤버들은 범죄를 저지른 뒤 소년원에 드나들기도 했고, 사고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는데요.(총장 노부코 역시 소년원행을 면치 못했고,여기서도 난동을 부려 수용기간은 약 1년 반이 걸렸다는..)


소년원에 있는 동안 총장 노부코가 유일하게 걱정했던 것은 스케렌의 존속여부였는데, 후대 총장은 한층 더 세력을 확대해 소년원을 출소한 노부코를 감격시켰다는 후문이죠…


오글거림과 낭만이 뒤섞인 시대였습니다.


‘틴즈 로드'에서는 그 밖에도 인기 있는 레이디스 인물들이 게재했는데, 16살에 총장에 오른 카오리 역시 그러했습니다. 카오리는 잡지에 나오자마자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인기를 끌었고, 이 때문에 잡지사에선 부랴부랴 양키 패션 코너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카오리의 인기에 편집부에는 팬들로부터 온 캐리커처와 팬레터가 무수히 쌓이기도 했습니다.

레이디스1-001.png 카오리

참고로, 카오리는 대만 타이베이시 출신입니다. 어렸을적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카오리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는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갔고, 이후 친척집을 방황하던 카오리 역시 어머니를 찾아 일본으로 왔는데요. 하지만, 어머니의 일이 바빠 거의 별거 상태를 이어갔고 그렇게 레이디스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이 길로 빠져든 케이스였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급기야 어느 레코드 회사로부 오퍼를 받고, 귀풍날 (鬼風刃)이란 그룹으로 cd 데뷔를 하기도 했습니다. 만화가 현실인지, 현실이 만화인지 참 묘한 장면이었죠..


레이디스는 소녀들의 유일한 보금자리


도대체 이 시대, 이 소녀들은 왜 레이디스에 모여들었을까요? 많은 학생들은 ‘있을곳’을 찾아 레이디스로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한 신입 멤버는 집회지각, 무단 결석 등 때문에 선배들로부터 호되게 질타를 당했는데 그러자 바로 공책에 메모를 하기시작합니다. 나중에 취재팀이 물어보니 선배의 말을 금방 잊어 버리기 때문에 메모하고 있습니다고는 하는데.

스크린샷 2024-12-28 오전 12.23.04.png 유명한 레이디스 카오리

그러면서 본인은 중학교도 자퇴해 한자를 못쓰는데 스케렌에서 혼나며 한자도 쓸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시대 많은 폭주족들은 사실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다닌다 해도 행실이 불량하여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는 했는데, 튕겨져 나온 소녀들을 받아준 곳이 바로 레이디스이었던것이죠.


방황하며 허우적거리는 10대.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줄 자리가 있었다는것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크린샷 2024-12-28 오전 12.39.33.png 방황하는 토요코 키즈

최근에 일본에 토요코 키즈, 멘헤라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적이 있었잖아요.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신주쿠 앞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집단을 만들었고, 이들을 토요코 키즈라고 부르곤하는데.


어느 시대나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존재했고, 이들이 토요코 키즈로 나타났는지, 폭주족으로나타났는지 표출 방법은 달랐지만 뿌리는 어쩌면 동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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