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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23. 2023

부부싸움하면 하는 일

부부싸움 그리고 정돈  



냉기, 냉전, 무관심.

그러거나 말거나,

공감 안됨, 이해 안됨.


북치고 박치며 싸운 건 아닌데, 사람이 이상하게 말의 뉘앙스가 다를 때 예민해 진다. 감정 동물이어서 그런다쳐도 말의 씨가 독하거나 어떤 말에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더 이야기하려다 '말자'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제 남편과 어떤 사건이 있었다. 제 삼자가 끼인 일이라 말하기는 무척 애매하지만 나는 남편의 생각을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었다. 결국 다름을 이야기 하다가 입을 닫았고, 눈을 피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반나절 동안 말을 섞지 않았다. 이런게 오히려 대판 싸우는 것보다 독하다.

남편과 결혼해서 살아온 14년동안 큰 소리내면서 싸운 일은 딱 1번이다. 나머지는 말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의 파동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들이었다.


며칠 전 식사 후 뒷 정리 하지 않은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딴에 정리를 뒤늦게 하려던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싸움은 아니지만 약간의 언성이 높아졌고, 그 광경을 아이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둘다 목소리는 컸지만, 얼굴 표정은 웃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싸움'이라고 느끼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엄마, 아빠. 스탑! 싸우지 마요."


식사 후 외출하는 차 안에서 막내 요엘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말하면 얘네가 진짜 싸우는 게 뭔지 몰라서 그런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삼 남매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엄마빠 싸운거 아니야~그게 싸운거면 진짜 싸우면 기절하겠네!“


"봐봐 1년이 며칠이지? 365일 그럼 365일 곱하기 14년 해봐. 며칠이야?"


문제를 내놓고 다음 대사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 암산 어려워요."


"그럼 300곱하기 14 해봐,"


조금 뒤에 다엘이 입을 열었다.


"사 천 이...백??"


"그래 뭐 그럼 365일이면 5000 정도 되겠네? 정확히 5110일. "


"오! 근데요?"


"그럼 엄마 아빠가 너희 자라면서 크게 싸운 적 기억 나는 거 몇 번인지 이야기 해봐."


" 한 번!!" "한 번!!"


엘 형제가 동시에 외쳤다.


아이들도 안다. 엄마 아빠는 잘 안 싸운다는 걸, 그게 때로는 다행이고, 때로는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아이들이 긴장을 한다는 점에서다. 평소 잘 화내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안내도 긴장하지만, 화를 안내던 사람이 화를 한 번만 내도 그 파급력은 꽤 크기 때문이다.

 


뭔가 감정기류가 쎄하게 흐르면 우리 집은 깨끗해진다.

나는 주방과 창고, 세탁실 청소를 한다. 이상하게 할려고 하는 게 아니라 청소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남편은 오늘 밀렸던 집안일을 하러 혼자 나갔다 왔다. 평소 혼자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혼자 나가서 빌더스(인테리어, 건축자재 파는 곳)에 갔다. 처음에는 왜 나가는 지도 몰랐다. 거진 2주간 밀렸던 주방 수전 문제와 욕실 수전 문제, 지난 번 1000피스 조각을 무너뜨렸던 범인인 앉은 뱅이 탁상 경첩까지 사서 들어왔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나가서 사다가 척척 고치고 멀끔하게 만들어놨다. 이게 어인일?


이럴 때마다 느낀다. 감정이 상하거나 더럽혀 졌을 때 사람은 뭔가 깨끗하게 하거나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으로 책상, 집안 정리 정돈에 에너지를 쏟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게 심리학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술의 범주는 아니지만, 감정의 정화나 갱신, 회복을 타켓으로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것 말이다. 정서 정화를 위해서.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리정돈 한다는 사람 여럿 봤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인 것도 같다. 어쩌면 남편도 말이다. 근본적인 것은 이런 것으로 해결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곧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집 안이 깨끗하고 정돈된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집안 좀 지저분해 질 때 쯤,

"싸움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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