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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07. 2023

1000피스 퍼즐을 엎어버렸다

사춘기 딸을 대하는 자세




"어머! 어떻게 해. 미... 미안... 얘들아~ 미안해."


비굴했다. 청소하려고 책상을 한쪽으로 밀었는데, 책상 위에 놓인 맞추다 만 퍼즐이 와르르 쏟아졌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이를 어쩌나 싶었다. 퍼즐을 대신 맞춰줄 시간도 없고, 그저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할 뿐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퍼즐 테두리 피스가 윗줄 아랫줄 군데군데 놓여있다. 좌우 테두리도 몇 피스씩 이어 붙여 놓은 피스가 보인다.


1000피스 퍼즐을 벼르고 벼르다가 아이들을 위해 두 달 전에 사줬다. 별이는 안 하겠다고 했고, 엘형제는 굳은 의지로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웬걸, 사다만 놓고 하지도 않는 퍼즐 박스가 피아노 아래 쳐 박혀 방치됐었다. 오며 가며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퍼즐 해" 한 마디씩 던졌지만, 찬밥신세 퍼즐 박스는 어두컴컴한 곳 독방신세였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퍼즐 박스를 보면서 '내가 또 사주나 봐라.' 읊조렸다.


방학한 지 1주일, 심심한 틈도 모자라 정전까지 돼버리면서 결국 퍼즐을 꺼내 들었다. 퍼즐 박스를 구해준 건 은별이었다. 별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퍼즐을 가지런히 분류하면서 차분하게 맞추기 시작했다.

2010년 별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 혼자서 1000피스 세계지도 퍼즐을 맞춘 경험이 있다. 당최 세계지도에는 파랑과 초록 밖에 없다는 사실에 후회 남발했지만 결국 해냈다. 당시, 태교에 좋을 것 같기도 했지만, 남편이 3박 4일 출장 간 탓에 할 게 필요했다.  가족 누구 하나 없는 외지, 지방으로 이사한 지 1년 되던 해, 추운 겨울이었다. 혼자 나다닐 곳도 없고, 만삭 배로 다니다 혹여나 미끄러질까 봐 마트 가는 일 아니면 삼갔다. 당시 했던 일은 집안에 틀어 박혀 드라마를 보면서  간식이나 요기를 하면서 3박 4일간 퍼즐만 맞췄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조차도 몸이 무거워 겨우 땅 짚고 일어나 뒤뚱거릴 때쯤이었다. 아! 퍼즐 하다가 지치면 뜨개를 들고 목도리를 뜨기도 했다. 그러니까, 가능한 태교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별이가 퍼즐을 하니까 할 생각 없던 다엘, 요엘도 덤벼들었다. 그렇게 퍼즐 맞추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한 20분 흘렀을까,

아악-

소리와 함께 "아빠! 아빠!" 부르는 다엘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부러졌어요. 드디어!"

"뭐가?"

"책상다리 드디어 부러졌어요."

지난번부터 부실했던 다리였다. 책상다리가 접히는 바람에 상 위에 맞춘 퍼즐이 쓸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엘이 상을 옆으로 밀려고 건드렸는데 그 통에 부실한 다리가 지탱을 하다가 접힌 모양이었다. 별은 씁쓸한 표정으로 다엘은 한번 가자미 눈으로 흘려보곤 어쩔 수 없다며 퍼즐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고 난 뒤 확인 하니, 앉은뱅이책상은 다시 세워져 있었고, 임시방편으로 소파에 기댄 채 그 위에 다시 맞추기 시작한 퍼즐이 놓여있었다. 이미 그렇게 한 번 엎어졌던 퍼즐을 내가 다음 날 청소하다가 다시 엎어버린 거다.


물론 1000피스를 다 맞춘 상태에서 엎은 게 아니었다. 작업 초반이라 500피스 아니 250피스도 안 맞춘 상태였지만, 내 기분은 마치 1000피스를 다 엎어버린 기분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 '다행이다. 뭐 그 정도는 다시 하면 되지.'였지만, 진심으로 이걸 어쩌나 싶은 생각이었다


일이 있은 후, 왜 그렇게 미안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실 전날 별이랑 작은 다툼(?)이 있었다. 아니, 그전, 지난주에 별이가 엄마 아빠에게 몇 가지 서운한 마음을 A4 2장 가까이 적어서 줬다. 절반은 이해됐지만, 절반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며칠간 별이 행동에 화가 났다. 별이 또한 맘에 안 드는 게 있었던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사춘기 딸아이에게 모진 잔소리만 한 엄마 이미지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찰나에 일을 벌였으니 시크할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 나는 딸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다.

"괜찮아요. 어차피 어제 다엘이 때문에  이미 한 번 넘어져서 다시 했는데, 또다시 하죠 뭐."

생각보다 쿨한 별의 반응에 괜히 자존심 상했다. 그렇다고 눈물을 훔치거나 뾰로통해 있었다면 기분이 또 안 좋았을 거다. 이렇든 저렇든 요 며칠 사이 사춘기라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얼굴에 기분 나쁨을 쓰고 다니는 별이 눈치를 보느라 나도 좀 예민해진 상태였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기에 이해는 하지만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라고 한 엄마, 이모, 할머니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래. 더하면 덜했지 덜하지는 않는구나.

 

부모로 사는 게 처음이라 나도 녹록지 않음을 느낀다. 지금 필요한 건 인정 그리고 이해와 사랑이다. 어른이자 부모로서 언젠가는 지나가고 함께 기억으로 이야기 나눌 그때가 오겠지만, 그저 이 시기가 잘 지나가길 바란다.


어쩌면 엎어진 게 퍼즐이 아니라 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맞춰야 하는 건 1000피스의 퍼즐이 아니라 내 마음과 별이의 마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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