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11. 2023

날라리 코칭을 받다.  

 반전 매력은 됐고, 글이나 쓰자.



어렸을 때부터 학년이 바뀌어 올라갈 때마다 반에 꼭 날라리 친구가 있었다.

반에는 날라리 무리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일진이라고 불렀다. 사실 일진이라는 이름도 나 중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다. 그전에는 그냥 "쟤 날라리."로 통했다. 날라리는 공부도 못 하고 나쁜 짓만 한다고 생각했다. 몇 몇은 엉뚱하지만 유쾌하기도, 착하기도 했다. 학교 수련회 가면 친구들 앞에서 가나서 유쾌한 댄스를 추는 애들은 날라리였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도 날라리 멤버였다. 날라리 친구 중에도 친한 친구가 한 명은 있었다. 날라리 친구가 나를 좋아했던 이유는 내가 '착하고 귀여워서'라고 했다. 친한 날라리 친구 덕에 나한테 해코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1살 차이는 사촌 언니가 있었는데, 당시 껌 좀 씹었다.


"야! 네 친구들이 괴롭히면 언니한테 말해!"


엄포를 놓는 언니 덕에 당시 동네에서는 '날라리 사촌 동생'으로 알려져 웬만해서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동네에서 노는 날라리나 학교 날라리는 언니가 다 아는 사람이었던 탓이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일진 무리 언니 5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마도 당시에는 초등학교 5학년쯤 됐던 것 같다. 신발도 안 신은 채 바란 통바지를 바닥에 끌고 다녀 바지 밑단이 다 해져있었다. 무릎에 커다란 누더기 구멍 한 개, 머리는 깻잎 머리에 실핀으로 고정했다. 옷 색깔로 휘황찬란하다. 무슨 무지개냐,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무지개만큼 예쁘면 말을 안 하겠다. 암튼 색깔만큼이나 개성 있게 생긴 언니들이었다.


"어이, 꼬맹이 일루 좀 와봐."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나를 구석으로 불러 세웠다.


"이 언니가 신발이 없어서 그러는데 언니 택시 타고 집에 가게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순간 긴장은 됐는데, 내 등에 어깨동무하듯 손을 걸치긴 했지만 말은 제법 상냥했다. 그러니까 무섭지는 않았다. 그래도 "뒤져서 나오면  백대!"라는 말이 나올까 봐 심장이 콩닥거렸다.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천 원짜리 지혜를 꺼내서 건네줬다.


"더 없어?  있을 건데."(심장이 쫄렸다)

"네? 아. 잠깐만요. "


다른 쪽 주머니에 있던 5,000원짜리가 나왔다. 준비물 살 돈이었다. 큰일 났다. 엄마한테 혼나게 생겼다.


"야야, 쫄지마. 언니가 갚을게."


이렇게 말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울지 않았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집에 와서 사촌 언니한테 다 일렀다. 언니는 나에게 누가 그랬냐며 인상착의 설명하라고 했다. 당시에도 관찰력 깨나 있었던 나는 미주알고주알 본 그대로 언니한테 설명했다.(아 그때부터 글썼으면 지금보다 더 잘 썼을 텐데)


"걱정하지 마. 언니가 찾아다 줄게!"


진짜로 그다음 날 사촌언니는 6000원을 받아왔다. 대박이었다. 언니가 커 보였다.

그 에피소드는 그렇게 일단락 됐고, 그다음에 동네에서 같은 언니들을 마주쳐도 나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연극 팀원으로 참여했는데 내 역할이 '날라리 1'이었다. 각 배역이 있는데 머뭇거리다가 다른 배역을 놓쳤다. 단 한 번도 일탈이라는 걸 해본 적 없었다. 이 참에 역할이라도 한 번 해볼까 싶기도 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날라리 1'을 맡게 됐지만, 혼을 다해 연기했다. 날라리 사촌언니에게 바지를 빌렸다. 길게 늘어진 허리띠도 빼먹지 않았다. 머리는 깻잎으로 붙여 실핀을 x자로 2개 꼽았다. (당시 깻잎머리 유행)

껌! 껌도 쫙쫙 씹었다. 왜인지 껌을 씹어야 제대로 일 듯했다. 약간의 화장도 했다. 촌스럽게!

짝다리를 짚고 아니꼬운 표정을 하면서 시건방진 태도로 연기를 했다. 손가락으로 입에 있던 껌을 꺼내서 검지에 돌돌 말아 보이는 제스처도 잊지 않았다. 중간중간 침 뱉는 연기는 언니한테 전수받았는데 흉내만 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야! 주선이가 날라리역을 한다고? 쟤가?"


순하고 착한 범생이미지였던 내가 그런 역을 할리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사촌 언니의 코칭을 받고 잠시 날라리로 빙의했었다. 실감 난다는 표현에 찬사를 받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게 찬사 받을 일인지는 모르지만)


반전 매력, 이럴 때 통하나 보다. 그 뒤로도 다른 역할도 여러 번했다.


날라리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모범생인데 잘 노는 친구도 있었다.

공부를 잘해서 잘 노는 건가, 잘 노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건가 궁금했다.

친구 중에는 평소에는 조용한데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 재끼며 희한한 포즈를 춤을 추는 친구가 있었다.

평소에는 미친 듯이 노는데 시험만 보면 점수가 잘 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못 생겼는데 패션 센스가 뛰어나 예뻐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요즘 말에 '많이 놀아 본 사람이 잘 놀 줄 안다'라고 한다.

남자 좀 많이 만나 본 사람이 결혼도 잘한다는 말도 있다. (주변에서 주워들음)

실제로 고등학교 때 유명한 날라리였는데,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고 클럽 죽순이로 살다가 지금은 결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운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릴 때 너무 놀아서 이제 놀 것도 없다며, 열심히 자기 계발하면서 산단다. 이런 얘기 들으니 나는 너무 안 놀았나 싶다. 좀 잘 놀아 볼걸, (우스갯소리다)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친구는 늘 인기가 많았다.

반전 매력을 가진 사람! 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이 화보인 치어리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잘 노는 날라리 경영자 <버진>의 리처드 브랜슨

<애플> 2세대 CEO 팀 쿡

디제잉에 진심인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

185센티미터의 키 와 79킬로그램의 슈트발 영화배우 뺨치는 대통령 존 케네디

비장의 무기 색소폰 연주자 대통령 빌 클린턴

제법 잘 노는 날라리 리더 버락 오바마


위에 나열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 나라의 대통령이다.

모범생으로만 살지 않고,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소위, 모범생인데 날라리를 자처하는 사람말이다.

진중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과묵해야 할 것 같아 보인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게 될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매력에 빠진다.

 


나는 모범생이긴 했지만, 그리 잘 노는 학생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 매력부자가 되고 싶고, 한 사람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서 유명한 사람들처럼 날라리로 살아보자니 여전히 뭔가 어색하다.


"아주 오랜 기간 모범생으로 살아왔더라도 당신은 멋쟁이 날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믹스>에 나와있다.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이다.

나의 진짜 이야기를 내 말과 모습 이상으로 담아 줄 수 있는 도구가 바로 '글'이다.

그냥 나는 글에서 놀면서 반전매력 날라리가 되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성장, 임계점 뛰어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