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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욕심

지난 기록 in Germany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독일 여행 중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고모와 고모부를 만났다. 첫째 별이 기준으로 15년 만이다.


남아공에서 떠날 때 우리는 일단 독일을 거쳤다 가기로 했었다. 언제 떠날지 기약 없었기에 무조건 '떠날 때'라는 기준만 있었다. 그 시기가 이렇게 빨라질 줄이야.

여하튼 우리는 독일에 왔고, 건물과 거리, 언어에 대한 이질감 빼고는 남아공과 다를 것 없이 익숙한 느낌이다. 몇 년 만에 마주한 형님, 고모부님, 수정, 예나 그리고 수정이의 반쪽인 조카사위 성수까지도 늘 함께 만나온 익숙한 사람같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어제 만난 사이 같은 우리. 꼭 그렇지만도 않을 텐데 이런 게 가족인가 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닮아서 일 수도 있겠다 싶다.


독일에 와서 가장 힘든 건 언어다. 독일어라고는 할로(Hallo, 안녕하세요), 쿠덴 모르겐(Guten Morgen, 아침 인사), 당케쉔(Danke schön, 고맙습니다), 츄스(Tschüss, 잘 가, 안녕), 비테(Bitte, 주세요), 밀히(milch, 우유), 카페(kaffe, 커피), 브롯(brot 빵)이 전부다. 독일어 배워본 적 없는 나는 이 만큼 아는 것도 장하다 싶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디 가서 더듬거리고 겨우 빵, 커피, 우유만 먹을 수 있을까 싶다. 돌아다니며 보이는 온갖 이정표와 간판, 안내 포스터 등 모두 다 독일어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살라고 하면 나는 언어 때문에 못 살겠구나 싶은 마음이 마구 올라왔다. 답답하다.


8년 전 남아공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영어라고는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것, 편입영어 때 외웠던 단어들 말고는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도 없는 나는 영알못이었다. 대부분 당황했고, 답답했고, 속상했다. 7년 반 이상이 지난 지금, 웬만해서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독일어를 배우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잘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독일에서 살 것도 아니면서 왜 독일어를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널린 독일어를 보고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에 한 번 생각해 봤다. 어느 나라를 가든 영어로 통용된다지만, 적어도 몇 개국 어는 하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거다.


이제 필리핀으로 가면, 사역을 위해서 따갈로그어도 배워야 할 텐데 지금 독일어가 문제가 아니다. 영어를 더 잘하던지, 따갈로그어를 금방 배우던지 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앞길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부딪히면 다 하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살짝 위로 삼아 본다.


Record written on June 19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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