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회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방송작가에서 콘텐츠 작가로, 콘텐츠 작가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by 최희진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꽤 다양한 업무 환경을 경험했다.
직장인처럼 9 to 6를 지키는 곳도 있었고, 자율 출퇴근이나 재택 근무가 가능한 곳도 있었다.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일하던 분위기부터 상사에게 깍듯하게 출퇴근 인사를 해야 하는 곳까지. 비교적 여러 환경을 거쳐왔지만, 이 회사는 조금 달랐다.


우선 사무실이 정말 조용했다.
사무실이야 원래 조용한 게 맞지만, 여기는 ‘조용하다’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하루 종일 들리는 소리는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출근하면 안녕하세요 인사도 하고, 업무 준비하면서 전날 본 TV 프로그램이나 날씨 얘기 정도는 오가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장면이 전혀 없었다.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해왔던 터라 이 적막이 꽤 힘들었다. 대표님, 부장님, 팀장님 가릴 것 없이 인사하고, 일하다가 커피도 사러 나가던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만 하다 퇴근한 날도 많았다. 출근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어서 머쓱했던 적도 있었고, 퇴근할 때 인사도 없이 칼같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사이가 안 좋은 건가 싶어 혼자 추측하기도 했다.


점심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오는 직원 몇 명은 각자 자리에서 밥을 먹고는 낮잠을 자거나, 커피를 사러 나가거나, 철저한 개인 플레이였다. 다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점심시간마저 이 적막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게 유독 답답하게 느껴졌다.


결국 참다 못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사람들 틈에 슬쩍 껴보기로 했다. 업무적으로 자주 카톡을 나누던 디자이너님께 조심스럽게 같이 식사하실래요? 하고 물었고, 그날에서야 이 회사의 적막한 분위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회사는 오픈 때부터 함께한 멤버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인사도 활기찼고, 밥도 같이 먹고, 회식도 하고, 카페도 다니던 평범한 회사였다고.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이 전체 회의에서 말했다고 한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친목하는 곳이 아니다. 회사 근방 200m 안에서는 만나지도, 밥도 먹지 말라고. 퇴근 후 직원들끼리 모여 회사 불만을 이야기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 이후부터 대표님은 사무실을 수시로 오가며 개인 톡을 하는지, 사담을 나누는지 지켜봤고, 조금이라도 웃거나 잡담을 하면 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사무실에서는 말이 사라졌다고 했다.

회사에 비해 유독 많아 보이던 CCTV도 사실상 직원들 감시용이라는 이야기가 덧붙었다.


그제서야 이 적막이 이해됐다.

업무로만 대화를 나눴던 디자이너님은 생각보다 훨씬 활발하고 수다스럽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역시 말을 섞어보지 않으면,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날 이후, 나는 대표님이 없는 단톡방에 초대받았다. 사무실에서 보던 얼굴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회사는 정말, 여러 의미로 재밌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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