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첫 날부터 적응이 안돼요.

방송작가에서 콘텐츠 작가로, 콘텐츠 작가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by 최희진

방송작가 시절에는 따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았다. 보통 오전 10시즈음 출근해서 밤새거나, 회의나 미팅만 하고 퇴근하거나 들쑥날쑥한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 직장인의 공통 출퇴근 시간 9 to 6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올빼미의 삶을 살던 나는 아침 기상이 가장 힘들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서는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가 된 것처럼 두근거리다가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경기도 광명이었고, 회사는 강남 언주역이었다. 7호선을 타고 9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로에 한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남들 다 하는 출근 시간에 출근해본 적이 없던 나는 지옥철이라는게 이런 거구나를 경험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은 내 의지대로 타고 내릴 수 있는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출근 물결 속에 내 몸을 맡겨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었고, 내려야 할 역이 아닌데도 사람들에 밀려서 내렸다가 다시 타야 했고, 정작 내려야 할 곳에서는 목청껏 내린다고 소리치면서 온 몸으로 사람들을 밀어야만 했다. 이미 출근 전부터 기진맥진한 상태로 첫 출근을 했다.


설렘반, 걱정반의 마음으로 출근했더니 원래 출근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래도 지각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회사 복도에 서 있었는데 출근 5분 전이 되서야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내 자리를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를 안내해준 건 면접 때 안내해줬던 실장이었다. 그래도 한 번 봤던 얼굴이라고 첫 출근의 그 어색한 상황에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후 대표님이 출근하고 전체 미팅을 통해 자기소개를 했다. 내 직함은 '작가'가 되었다. 본래 이 회사에 있는 직함은 아니었으나 내가 방송작가 출신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삼아 직함을 정해준 것 같았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내게 주어진 첫 업무는 '상세페이지 검토'였다. 이미 런칭된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보고 어떤 부분이 더 강조되면 좋고, 어떤 내용이 추가되면 좋을지 첨삭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상세페이지 구성이라는 영역은 나에게도 생소했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렸다. 해외 펀딩 플랫폼의 상세페이지는 국내 쇼핑 플랫폼이나 펀딩 플랫폼보다 훨씬 간략하고 딱 필요한 내용만 있어서 간단하다 못해 썰렁해 보일 지경이었다. 페이지 전체를 꽉꽉 눌러 채우고 스크롤을 한 껏 내려서 제품의 A to Z 까지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워드 한 가득 첨삭내용이 가득찼다.


그러나 내 첫 업무는 제대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는 국내 기준으로 상세페이지를 첨삭한 것이다. 하지만 타겟은 북미시장이었고 첨삭의 기준도 당연히 북미 플랫폼 기준으로 되었어야 했다. 많은 첨삭 내용은 북미 시장을 기준으로 볼 때는 너무 TMI 투성이였던 것이다. 나는 내 업무 마인드부터 바꿔야 했다. 국내 기준이 아닌 북미 시장을 기준으로. 마인드셋이 첫 업무의 기본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첫 업무, 시작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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