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희생양의 심리

왜 '분노'는 심판에게 오는가

by 남발

코트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하나의 정점을 향하는데, 그것은 승리의 환희라기보다 '실패를 처리하는 방식'에 가깝다. 테니스는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스포츠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고, 그 무너짐의 원인은 대개 자기 자신의 근육이나 멘탈에 있다. 사실 팀스포츠가 아닌 선수 개인이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치러야 하는 전쟁 같은 개념이라 멘탈이 절대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무능을 정면으로 응시할 만큼 강인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자존심이 바닥에 닿기 직전,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안의 뜨겁고 비참한 찌꺼기를 받아내 줄 '외부의 존재'를 갈구하는 게 아닐까?

이 지점에서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희생양 메커니즘'은 고대 부족의 제단을 떠나 테니스코트로 자리를 옮긴다. 지라르는 공동체 내부에 갈등과 폭력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누군가 한 명을 '악(惡)의 근원'으로 지목하여 그에게 모든 증오를 퍼부음으로써 집단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때 선택되는 희생양은 대개 집단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존재, 즉 '경계에 선 자'들이다. 테니스 코트에서 이 자격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은 누구도 아닌 심판이다. 너무 딱이지 않나? 나는 경기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개입하고, 그만큼 여러 의미의 노출에 무방비하지만 경기의 결과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는 철저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미움과 노출의 총량은 수치로 증명되기도 한다. GAA(게일릭 스포츠 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심판의 94%가 매 경기 언어적 폭력을 경험하며, 2023년 럭비 월드컵 당시 쏟아진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 중 무려 49%가 오직 심판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꽤나 경악스럽다. 이 압도적인 숫자는 판정의 정확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심판이 '옳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불쾌한 패배감을 쏟아부어도 뒤탈이 없는 '안전한 쓰레기통'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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