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의미를 찾아보니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제정된 휴일이라고 되어 있다. 엄연한 휴일이건만 대학교는 평일이라면 근로자의 날과 상관없이 문을 열어야 하기에 한동안 쉴 수 없었다. 대신 휴가를 하루 더 받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수당을 주는 것으로 변경이 되었다. 제도가 변경되며 사측에서는 대부분의 교직원들이 쉴 수 있도록 강한 권유를 하고 있다.
올해는 아이들 학교 재량 휴업도 아니기에 당연히 근무하려고 했다. 솔직히 이런 날은 급한 일이라며 연락오기도 쉽고, 여러 모로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일하는 게 낫다. 이런 이유로 처음엔 당연히 근무하겠다고 손들었다. 하지만 부서에 한 명이라도 쉬어야 눈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고, 누군가는 쉬어야 했기에 아이들이 가장 어린 내가 급히 선택(?) 되었다. 갑자기 생긴 휴일에 어리둥절. 처음에는 여러 장난감을 놓고 고르는 아이처럼 무엇을 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출근해야 하는 현실주의자 남편은 이 기회에 못 다닌 병원을 모조리 방문하라며 치과, 산부인과, 내과 투어를 추천했다. 지독한 비현실주의자인 나는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병원 투어로 날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영화를 볼까 아니면 좋아하는 북카페에 가서 주말에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명당자리를 맡아 놓고 책 읽는 행운을 누려볼까. 줄 서서 먹는 브런치 맛집에 가서 인스타용 사진 좀 찍어올까. 평소 못 만났던 친구를 만나러 가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니야, 마음 약해지지 마. 정신 차려. 도리도리질하며 다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영화 볼까. 애들도 좋아할 텐데. 맛집 갈까. 요즘 부쩍 먹는 양이 늘어난 첫째도 좋아할 텐데. 북카페 갈까. 북카페 사장님이 꿈인 둘째가 까르르 넘어갈 텐데.
평소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난리 부르스를 치면서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나란 인간 나조차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리석은 여인네 같으니라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 사이 아침해가 밝았다. 거의 혼자 노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아이들 밥을 차려주었다. 주말에 여러 외부 활동을 하며 피곤이 쌓인 탓인지 아이들은 비몽사몽 침대 밖에 나오기 힘들어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된장찌개에 밥 말아 몇 숟가락 먹고도 잠이 깨지 않아 소파에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내 안에 무언갈 자극했다. 혹시라도 펼쳐질까 무서워 고이 접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말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다시 잠들고 있는 어린이들 Listen! 자, 집중. 지금부터 엄마가 아주 중요한 공지를 할 거니까 잠을 깨고 두 눈 부릅뜨고 들어야 할 거야."
귀여운 남매들, 갑자기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엄마는 내일 회사에 안 가게 되었어. 갑자기 휴가가 생겼거든. 어린이들 중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봐. 물론 학교에 가도 괜찮아. 학교에 안 가면 엄마랑 박물관이랑 공원으로 소풍을 갈 거야."
첫째는 그 즉시 손을 곧게 쳐들었고 둘째는 고민하는 척했다. 그럼 너는 내일 학교 가라는 오빠의 말에 서둘러 양손을 들어 올리긴 했지만.
돌즈음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했다. 화창한 봄햇살이 집안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도저히 어린이집 안에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날. 열은 안 나지만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은 날.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기 몸통만 한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루 신나게 밖에서 놀자. 오늘은 하루 푹 집에서 쉬자고 해주지 못했던 것이 목에 가시처럼 항상 걸려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믿었고 그래서 늘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 녹초 상태지만 훨씬 더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곤 했다.
내일 늦잠 잘 거라고 행복해하며 잠자리에 든 아이들을 보면서, 아마도 아이들은 모를 마음의 빚을 하나 지웠다. 그리고 혼자 속삭였다.
엄마는 다음 기회에 혼자 놀게.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