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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Apr 01. 2023

상자 속의 상자 같은 꿈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어릴 적 나에겐 정원이 딸린 집에 사는 꿈이 있었다. 나무 몇 그루 심어진 마당이 아닌, 반드시 큰 정원이어야만 했다. 잘 다듬어진 관목으로 구분된 미로 같은 산책로는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하고, 한가운데에는 분수대와 장미덤불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 넓은 정원의 끝에는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커다란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나는 언젠가 이런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다. 사실 꿈이라기보단 사춘기도 찾아오지 않은 어린아이의 상상력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수는 없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정원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전원주택만을 목표로 하게 됐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자 "전원"이란 단어가 빠지며, 또 한 번의 꿈의 축소를 거치게 됐다. 직장인이 된 후로는 주택이든 아파트든 그냥 내 명의로 된 집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고도 현실적인 희망을 품게 됐다. 내 꿈은 인생의 새로운 장막이 열릴 때마다 수축을 반복해, 이제는 꿈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작아졌다. 마치 상자 속의 또 다른 상자처럼, 한 상자를 열면 선물은 없고 그보다 작은 상자가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을 십여 년 다니고도 여태껏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작아질 수도 없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작은 상자만 손에 쥔 채로.

어쩌면 내가 너무 큰 꿈을 꿨다는 추측도 해본다. 내가 상상한 웅장한 정원이 딸린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일 텐데, 그런 세상이 아주 멋진 모습일 거라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도 그리 멋지지 않은 것 같다. 터무니없이 큰 꿈은 그렇다 쳐도 작은 꿈 정도는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아량 따윈 없는가? 아쉽게도 세상이 발전할수록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은 작아져야 하는 현상이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넋두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꿈이라 칭했던 그 모든 것들은 열매일 뿐이었으니까.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거나 인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과정보단 결과를 목표로 삼았던 어리석은 내 잘못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긴 겨울을 견뎌내고 찾아온 봄바람을 느낄 수 있다면 인생은 버틸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따스한 바람 속에 라일락 향기가 섞여있으면 좋겠다. 라일락이 무슨 열매를 맺는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그건강하게 살아서 꽃구경을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 나는 딱 그 정도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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