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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May 05. 2023

오월의 눈부신 햇살에 옅은 그림자

빛나는 기억과 아픈 기억

오월보다 연애하기 좋은 달이 또 있을까? 사월은 아직 쌀쌀하고 유월이면 벌써 덥다. 이런 때에는 맘껏 사랑을 해야 한다.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따뜻하다는 이유면 충분하다.


나도 오월이면 첫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연애든 사랑을 했다. 이때는 맨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도 필터를 거친 듯 전부 멋지게 보였다. 가로수와 건물, 그리고 길 위의 모든 것들이 저마다 빛을 품은 것처럼 뽀얗게 그려졌다. 그중 가장 빛나던 것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밝게.


그런데 지나간 오월들을 떠올릴 때면 미소와 함께 아련함도 뒤따른다. 그 시기와 연결된 이별의 아픔도 있기 때문에.


수년 전 오월이 시작되던 그날, 우리는 카페에 마주앉아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신 채였다. 어느 쪽도 말이 없었다. 어떤 할말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무'의 상태로 헤어짐은 완성되었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쪽은 나였다.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 위로 아른거렸다.

Photo by Hobin

그 잊을 수 없는 이별의 장면은 오월이면 꼭 한 번씩 나를 찾아온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 우리 사이에 아직 무언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걸까? 그러나 끝나 버린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에 오월은 너무 아름답다.


한편으론 오월에 이별해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다른 달들은 오월만큼 완벽하지 않은데 이별의 아픈 기억까지 더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봄이 가장 짙은 때에 빛나는 기억이 많으니 아픈 기억 하나쯤 더해진다고 어두워지진 않을 테니까. 눈부신 햇살에 옅은 그림자 하나는 아름다움을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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