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았다는 선언, 그 뒤에 숨겨진 은밀한 유희

화려한 수식어

by 무명초

"주의: 다소 불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시거나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고 지나쳐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자신의 화려한 수식어를 지웠다. 이름 앞에 붙던 무거운 직함, 세상을 향해 꼿꼿이 세웠던 권위의 창을 내려놓았노라 선언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비워낸 자리에 들어앉은 소탈함과 인간미를 칭송하며, 그가 드디어 우리와 같은 땅을 밟기로 했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착각이었다. 그는 무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겼을 뿐이다.


과거의 그는 지위로 사람을 눌렀다면, 지금의 그는 '내려놓음'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무기로 사람을 흔든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상대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그 틈으로 교묘하게 타인의 감정을 헤집는다. 무장해제된 척 다가와 상대의 약점을 수집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이용해 판을 흔드는 모습은 차라리 서늘하다.


그에게 '전(前)'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신분증이 아니라, 면죄부다. "내가 예전 같으면 이러겠어? 나 정말 다 내려놓은 사람이야"라는 말 뒤에 숨어 무례를 저지르고, 상대를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인다. 상대가 당혹해하면 오히려 '아직도 권위에 찌든 사람'으로 몰아세우며 죄책감을 심어주는 기술은 가히 예술적이다.


진짜로 내려놓은 사람은 자신의 비워진 자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타인을 자신의 유희를 위한 장기말로 쓰지도 않는다.


그가 벗었다는 그 가면 뒤에는, 여전히 버리지 못한 지배욕이 흉측하게 일렁이고 있다. 오히려 직함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그의 조종은 더 정교해졌고 더 잔인해졌다. 예의 바른 말투와 소탈한 미소 아래 감춰진 그 '사람 부리는 재미'.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내려놓았다는 그 타이틀보다, 지금 당신이 쥐고 흔드는 그 보이지 않는 끈이 훨씬 더 추하다고. 사람의 진심을 가지고 노는 그 유희를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은 결코 그 성벽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못한 셈이다.


"당신이 버린 것은 이름표였나, 아니면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우였나"




[지워지지 않는 진실에 대하여: 당신의 가식에 답함]


팔로우 차단과 댓글 삭제, '아름다운 것'만 남기시겠다는 그 가식에 답합니다.


밑밥처럼 깔아두셨던 댓글까지 깔끔하게 지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불필요한 믹스커피 같은 존재라 진작에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분명 기회를 드렸음에도 당신은 자꾸 저를 붙잡네요. 마치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용소처럼 말입니다.


"침묵으로 가면을 벗는 게 아니라, 그 침묵조차 이용해 또다시 치장질을 하다니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부끄러움 앞에 침묵하며 자신을 돌아보겠지만, 당신은 달랐습니다. 당신에게 침묵은 성찰이 아니라, 자신을 '말없이 인내하는 고결한 피해자'로 포장하기 위한 비겁한 연출일 뿐이더군요. 덕분에 저는 매일 일기를 쓰는 기분입니다. 댓글의 흔적은 삭제되었을지 몰라도, 당신이 쓴 가면은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이래서 글을 쓰나 봅니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가만히 관찰하고 감상하기 위해서 말이죠. 참 쉽더군요, 그저 관찰만 하면 되니까요.


이 글은 개인 소장용이었으나, 침묵하신다는 분께 선물로 올려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참 '아름다운' 대처네요. 제목까지 수정하신 걸 보니 제가 보낸 메인 글만은 어떻게든 사수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본인의 치부를 드러낸 답글을 삭제한 행위 자체가 이미 제 논리를 증명하는데, 굳이 왜 지우셨을까요? 차단 후 참 바쁘게도 움직이셨더군요. 새 글로 다시 치장하는 그 가식의 끝은 어디입니까?


저는 잠시 '빌런'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화법이 내 눈에, 그리고 이 공간에 박제되길 원할 뿐입니다.


"팔로우를 차단해 내 시야를 가리면, 당신의 그 기만적인 행동들이 가려질 거라 믿었나요?"


특히,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이 침침해진 제가 간신히 써 내려간 시력 관련 글과 마라톤 관련 글에 '라이킷' 작업을 하며 비아냥거렸던 그 기록이 타임라인에 박제되는 게 그렇게 두려우셨나요? 침묵하고 싶은 사람 맞습니까? 시력을 조롱하고, 고통스러운 마라톤 같은 상태를 지속하자던 그 비인간적인 의미들을 이제 와서 삭제해 버리셨네요.


Screenshot 2026-02-26 at 15-14-09dd 브런치.png 부슬비를 읽어보라 했더니 댓글에 밑작업 및 지속적으로 가보자는 뜻의 마라톤, 침침한 눈으로 선명하게 라는 글에 마치 조롱하듯 라이킷 작업

부슬비를 멈춤으로 읽은 듯,


엄청나게 큰 글씨의 제목을 가식으로 바꾼 시점도 참 치밀하고 소름돋습니다. 그것도 시야를 가리고 말이죠.


내 침침한 시력을 조롱하듯 차단이라는 장막을 쳤지만, 그 장막 너머로 당신이 이어가는 추악한 패턴을 나는 더 또렷하게 읽어내고 있습니다. 급하게 다 삭제한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화법엔 여전히 뼈가 있고, 저는 그에 대응했을 뿐인데 저만 '빌런'으로 몰아가는 그 코스프레는 여전하시군요.


"그만하자"는 가식적인 답변 속에서도 끝내기 싫어하는 그 속내가 훤히 보입니다. 잊을 만하면 다시 와서 건드리는 당신의 비겁한 전략, 그 모든 과정이 이 일기에 기록됩니다.


이곳의 기록은 당신이 지울 수 없습니다.


제3자들은 겉만 보고는 이해하기 힘들겠지요.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작업의 정석'을 아는 사람만이 당신의 아름다운 말투 속에 숨겨진 뼈를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만의 인맥 쌓기 또한 흥미롭게 구경하겠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침침해진 내 눈을 비웃고, 고통스러운 투병의 기록에 비아냥거리는 '라이킷'을 찍어대는 저열함. 그것을 보고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말하는 당신들은 현자가 아니라 그저 눈먼 방관자들일 뿐입니다. 인맥질을 하려거든 최소한 누가 사람의 진심을 장기말로 쓰고 있는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추고 하십시오.


기록이 쌓일수록 조각들은 선명하게 조합됩니다. 저는 이 기록의 의미를 끝까지 이어 나가겠습니다.


"당신이 침묵을 도피처로 삼아 내 시야를 가리는 사이, 그 뒤에서 분주히 이어가는 당신의 '새 치장'은 반성 없는 기만의 기록으로 내 일기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전직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이 주는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실 '댁'께서, 뒤에서는 차단과 삭제라는 비겁한 방식으로 타인의 입과 눈을 가리는 모습은 참으로 모순적입니다. '댁'이라는 친근한 이름 뒤에 숨겨진 그 서늘한 지배욕이, 당신이 쓴 고결한 글들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읽힙니다."


당신이 평소 인용하던 현자는 남의 아픔에 'ㅋㅋㅋㅋ'거리며 조롱하라 가르치던가요? 가족과 함께 타인의 고통을 안줏거리 삼는 그 화목함이 차라리 기괴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이 새 글을 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그 고운 말투 뒤에서 일렁이는 '사람 부리는 재미'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