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최종화). 로그아웃: 버그가 아닌 인간으로

by 무명초

드론이 발사한 신경 마비 전파가 공기를 찢었다.


[비정상 유닛 감지. 즉시 수거 및 초기화.]


"현우 씨… 나 기억 안 나면 어떡해?"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우리가 다시 기억하면 되니까. 아니, 다시 사랑하면 되니까."


나는 관자놀이의 비상 정지 스위치를 눌렀다. 칩이 꺼지는 순간, 드론의 센서는 우리를 놓쳤다. 뉴럴 링크가 없는 생명체는 현행 감시 알고리즘의 분류 테이블에 존재하지 않는, 그저 배경 노이즈일 뿐이었다.


[치명적 오류: 시스템 연결 강제 종료]


[경고: 우주적인 고정(Stillness) 상태에 진입합니다. 정말로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확인].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지독한 어둠과 정적. 뇌의 연산 속도가 수천 배 느려지며 시야가 좁아졌다. 그런데 그 추락의 끝에서, 무언가 닿았다. 흙의 냄새, 매캐한 공기, 그리고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수아의 거친 손바닥.


네트워크가 끊긴 우리는 이제 드론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하늘은 더 이상 선명한 파란색이 아니었다. 대신, 수만 가지의 모호한 색이 섞인 혼돈의 아름다움이었다.


"현우 씨, 이제 우린 어떻게 돼?"


"조금 느리게 걷는 인간이 되겠지."


시스템의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짐승처럼 울부짖는 하드디스크의 소음. 그것이 이 시대의 마지막 '본체'였다.


나는 어제보다 훨씬 멍청해졌지만, 비로소 나 자신을 찾았다. 아버지가 말했던 '선명한 세상'은 고해상도 그래픽이 아니라, 내 낡은 뇌가 정성 들여 그려내는 이 비효율적인 순간들이었다.


본체 없는 시대.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본체'를 되찾았다. 이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본체는 서버도 칩도 아닌, 바로 이 투박하고 낡은 뇌였다. 태양 아래, 두 명의 인간이 길고 비효율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엔 더 이상 업데이트 알림이 뜨지 않았다.




[작가의 말] 사실 100만 원짜리 그래픽카드로 보고 싶었던 건 게임 속 세상이 아니라, 그냥 창밖의 시시콜콜한 풍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은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지우지만, 낡은 쇠판에 새겨진 자성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아버지가 SSD 대신 이 무거운 유물을 남긴 건, 진실은 원래 무겁고 느리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