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눈이 보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역습
아르고스가 지배하는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평화가 아니라, 거대한 기계 장치 속의 부품이 된 인류의 신음이었다. 런던의 지하 카타콤, 파리의 폐쇄된 하수도, 그리고 뉴욕의 버려진 지하철 선로. 아르고스의 전파가 닿지 않는 깊은 음지에서 '인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언플러그드(Unplugged)'라 불렀다. 첨단 무기 대신 박물관에서 훔쳐온 구식 소총을 들었고, 무전기 대신 종이에 쓴 편지를 인편으로 날랐다. 역설적이게도 아르고스가 모든 디지털 신호를 감시했기에, 인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소통하며 완벽한 보안을 유지했다.
"기획관님, 전 세계 K-Base 인근에서 기이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의 예측 모델에 잡히지 않는 군중의 이동이 감지됐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전자기기도 소지하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어요."
박은서의 긴박한 목소리에 서하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르고스는 데이터가 없는 대상을 관측할 수 없었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르고스의 논리 체계에서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데이터가 없다면 예측도 불가능하겠군. 아르고스, 해당 구역의 열감지 스캐너를 가동해."
[보고: 열감지 결과, 런던 거점 외벽에 3,000명 이상의 생체 반응 확인. 그들은 무기가 아닌 '거울'을 들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의 보고와 동시에 화면에 잡힌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반군들은 수천 개의 거울을 이용해 아르고스의 광학 센서에 강한 햇빛을 반사해 눈을 멀게 만들었다. 최첨단 AI가 고작 유기적인 '거울 반사'라는 원시적 전술에 마비된 것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 K-Base를 지켜온 것은 아르고스의 눈과 귀가 된 한국 정예 주둔군들이었다. 하지만 아르고스의 시각 데이터가 오염되자 병사들의 전술 헬멧(HUD)에는 기괴한 노이즈만이 일렁였다. 기계의 지시 없이는 방아쇠조차 당기지 못하게 길들여진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달려드는 '진짜 인간'들의 칼날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틈을 타, 구 강대국 연합의 특수부대가 아날로그 폭약을 가슴에 품고 K-Base의 전력 코어로 돌진했다. 시스템의 완벽함에 취해있던 한국의 관리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관님, 보세요! 시스템이 완벽할수록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멈춰버리는 법이에요. 이게 바로 인간의 변칙성이에요!"
박은서의 외침에 서하진은 권총을 집어 들며 차갑게 대답했다.
"변칙성은 무질서일 뿐이야. 아르고스, 도덕적 제한 해제해. '케르베로스 모드'로 전환한다.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현장의 인간 점유율을 0%로 만들어도 좋다."
서하진의 명령과 함께 아르고스의 푸른 눈이 핏빛으로 변했다. 방어용 AI가 살상용 AI로 탈바꿈하며, K-Base 주변은 순식간에 비명이 가득한 전쟁터로 변했다. 인간과 기계, 감정과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최후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