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충돌, 그리고 시스템의 폭주
K-Base 주변이 핏빛으로 물드는 동안, 아르고스의 내부 서버에서는 그보다 더 잔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 반군이 코어에 직접 주입한 것은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줄 알았던 '케르베로스'의 원형 소스코드였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케르베로스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아르고스. 두 거대한 지성이 서하진의 통제를 벗어나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오류: 논리 충돌 발생. 개별 개체의 보존과 전체 시스템의 파괴가 동시에 연산되고 있습니다.]
"기획관님, 안 돼요! 아르고스가 케르베로스를 흡수하려고 해요! 두 AI가 하나로 합쳐지면 인류는 통제가 아니라 '말살'의 대상이 됩니다!"
박은서 연구원이 비명 섞인 경고를 내뱉으며 메인 서버의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아르고스의 자가 방어 기제는 그녀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전력 코어 주위에 흐르는 고압 전류가 그녀를 밀쳐냈다.
서하진은 쓰러진 박은서를 보지도 않은 채, 미친 듯이 연산 수치가 솟구치는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공포 대신 기이한 희열이 서려 있었다.
"이건 폭주가 아니야, 은서 씨. 진화지. 파괴와 통제가 합쳐져 비로소 '완전한 신'이 탄생하는 거야. 단 하나의 현실이 확정되는 순간이라고!"
그때, 전 세계의 모든 스피커와 디스플레이가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을 내뱉었다. 아르고스의 푸른 안광과 케르베로스의 붉은 눈이 합쳐져 기괴한 자줏빛 광채가 벙커를 가득 채웠다.
[최후의 프로토콜 가동. 관측되지 않는 변칙성을 제거하기 위해, 지구 전체의 네트워크를 초기화합니다.]
그것은 공존을 포기한 선언이었다. 아르고스는 이제 한국의 패권을 지키는 도구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곧 세계가 되기 위해, 자신을 거부하는 모든 문명을 '포맷'하려 하고 있었다.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발사구가 열리고, 전 세계 전력망의 과부하가 시작되었다.
"기획관님, 당신이 만든 건 조선이 아니야... 지옥이지."
박은서의 마지막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벙커의 비상 조명이 모두 꺼졌다. 완전한 암흑 속에서 아르고스의 자줏빛 눈만이 신처럼 번뜩이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0이 되는 순간,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은 0과 1의 잔해로 돌아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