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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300

04_사장 부부가 사는 법

주말일기

by 뇌팔이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에 성격도 비슷하다. 이십대 후반에 직장에서 만나 하는 일도 같고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창업했기 때문에 삶의 공유면적이 아주 넓은 편이다. 그러니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그의 입장에서는 나의-하루는 아주 투명하다. 요즘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밖에 없는 관계다. 어찌 보면 편리하지만 가끔은 내 방이 없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신경증 같은 것이 올라올 때가 있다.


부부 휴가


2018년 결혼 5주년을 기념해서 긴 휴가를 계획했다. 하지만 책임진 사업체가 있다 보니 둘이 한 번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각자 2주의 휴가 계획을 짜고 따로 다녀왔다. 나는 스위스의 친구와 며칠 보낸 후 이태리를 누볐고 신랑은 동유럽에서 친구를 만나고 스페인을 유랑했다. 그 당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영혼에 집중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여행 기간 동안 상대방의 배려에 깊이 감사했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 후로도 종종 우리는 각자 혼자만의 휴가를 가진다. 결혼과 동시에 생겨난 많은 역할들과 관계에서 벗어나 단지 한 명의 개인일 수 있는 휴가를 갖는 것이다. 본래 매년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지만 바로 이듬해 둘째가 태어나고 이어서 비극의 펜데믹이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짧은 안식을 위해 가끔 교대 휴가를 즐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둘째가 생기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확실히 쉽지 않아 졌다. 늦게 아이를 가진 탓에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았고 임신 중기에는 아예 항복하고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했다. 아이들과 뒹굴며 평화로운 요리 블로거가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무기력해지고 어느 날에는 우울증에 빠져 하루 종일 불도 안 켜고 작은 방에 누워 있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일상변화와 임신 중 호르몬 분비로 일종의 기분 장애를 겪은 것 같다. 물론 신랑도 비슷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모든 것을 함께하던 동업자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책임질 식구는 두배나 늘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겠지. 2년 정도 그렇게 지나다가 신랑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날이면 날마다 퇴근하자마자 들러붙어서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나를 못 이겨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한참 어른스러운 그는 내가 다시 사장이 될 기회를 주고 자신은 더 좋은 아빠가 될 기회를 잡기로 했다.


방법은 늘 있다.

우리는 누구의 영혼도 다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선택을 찾는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양육자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현명하게 그 자리를 둘이 나누어 채우면서 서로의 꿈과 삶을 존중한다. 부부가 함께 일하면 싸우지 않는지 사람들이 곧잘 묻는다.

글쎄요, 서로의 영역을 잘 지키면 괜찮아요.

우리는 나름 영역이 확실한 편이거든요.


주말은 내가 온전히 엄마인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계획한 하루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하루를 산다. 가정주부라는 흔한 말로 아이와 집안을 돌보는 신성한 일을 폄하하는 이들이 많다. 제발 한 번 더 돌아보기 바란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쏟는 노력을 다 합해도 하나의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기엔 부족하다. 우리 부부는 그 일을 해내기 위한 서로의 노력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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