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의 유통기한
사망자 이상구.
아버지의 이름을 활자로 마주하는 순간, 눅눅한 골목의 공기보다 먼저 장례식장 냄새가 떠올랐다. 국화 향과 음식 냄새, 검은 상복의 먼지 냄새, 그리고 셋째 날 새벽까지 손끝에 남아 있던 지폐의 감촉.
미망인과 자매가 지키는 빈소에서 정은은 상주석에 앉았다. 남자 형제가 없는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빌린 검은 한복 치마를 늘어뜨리고 영정 앞에 나란히 앉았다. 첫날은 엄마가 까무라칠 때마다 빈소 옆 쪽방에 눕혀야 했다. 오래된 친구나 가까운 친척이 오면 여지없이 무너졌다. 동생의 남편은 회사 일이 바빠 늦겠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에게는 살뜰한 남편이지만 숫기없고 소심한 성격인 제부. 특별히 관계가 돈독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경황없는 날 같이 있어주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정은에게는 그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정은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장례는 영화처럼 추억이 스쳐가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의가 도착하고, 식당에서 과일이 부족하다며 추가 주문을 할지 물어보고, 회사 화환이 들어서고, 저녁마다 정산서에 서명을 하고, 부의금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열 장씩 묶어서 백 장 되면 여기 넣어
박카스 박스를 열어놓고 동생과 돈을 세었다. 마지막 날 현금계수기에 넣으면 그만이지만, 딱 떨어지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미였다. 결국 둘째 날엔 영은의 엉성한 지폐 묶음에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너는 돈도 안 세어봤어?... 그냥 내가 할게. 봉투마다 이름이랑 금액만 써.”
물론 봉투도 정은이 다시 확인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영은의 남편이 빈소에 온 것은 셋째 날이었다. 늦게 온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빈소를 서성거리는 제부 너머로 정은은 동생을 불렀다.
“영은아, 식당 이모님들한테 물건 정리 해달라고 하고, 매점에 정산서 뽑아달라고 해.”
빈소를 치우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장례비 정산을 서둘렀다. 아버지 이상구씨의 형제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운구는 제부의 친구들에게 부탁해야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제부 친구들이 서성거리며 운구차를 기다리는 것이 신경쓰였다. 엄마는 이제 기력이 다 했는지 꺼질듯한 눈으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정은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첫날 추가된 식사, 떡, 과일… 그리고 상복 대여비, 수의, 관… 대략 예상비용이 그려졌다.
“언니, 매점이 어디야..?’
영은이 뒷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산서를 받았나 싶었더니 아직 말도 못 했다고 했다. 첫날 장례식장 직원이 분명히 알려줬다. 추가 주문은 매점 직통 전화를 이용하라고. 밖에 제부도 와 있었는데. 매점 정산서 한 장을 처리하는 데에 정은이 꼭 필요했다.
“내가 가볼게.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
도깨비같은 얼굴로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을 배웅하고 나니 덩그러니 자매와 엄마만 남았다.
유독 말이 없는 제부도 함께 앉았다.
“나 유학가려고.”
뜬금없는 소리에 정은도 엄마도 말을 잇지 못 했다. 놀랄 기운도 없었다.
“몇년 전부터 준비 했어. 지난 달에 오빠가 아는 교수님이 다리를 놔주셨는데… 됐대.”
정은과 엄마는 영은의 유학계획을 그렇게 들었다. 장례식장 비용 정산도 제대로 못 받아오는 서른살 막둥이가 자기 유학준비는 알뜰살뜰 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언제 가는데? 어디로? 소개한 교수는 믿을만 하고?”
요망하고 괘씸한 계획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영악함도 구역질이 났다. 악의 없이 맹한 얼굴로 언제나 정은의 약을 바짝 올렸다. 나이 서른에 안전한 직장을 버리고 꿈을 쫒아 새로 시작하는 용기가 한편으로는 부러웠지만 당장 아쉬운 월급봉투에, 홀로된 엄마도 가볍게 내치는 무책임함이 더 부러웠다.
“응 전공 계속해보려고. 오빠가 아는 교수님이 미국에 우리 자리를 봐주셔서 학교 부설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면서 학위도 딸 수 있대. 빠르면 5년? 길면 10년 걸릴 것 같아.”
10년이라. 정은은 입을 닫아버렸다. 엄마도 평소같으면 보름은 괴롭혔을텐데 이번에는 분명 놀라긴했겠지만 당장 폭발할 에너지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뜨는 둥 마는 둥 국밥 한그릇씩을 해치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혼자 남은 집이 무서워서 들어가기 싫다고 정은을 따라 나섰다.
“오늘은 네 집에서 자고 갈래.”
일곱살짜리 꼬마처럼 옷자락을 잡고 우뚝 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택시에 같이 태웠다.
“영은이 서방이 사람이 괜찮아. 그치?”
아버지 장례식 따위는 없던 일처럼 엄마가 영은의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키도 크고 애가 말수도 적은 게 듬직해.”
장례식 내내 말 한마디를 안 붙이는 뻣뻣한 남자가 어디가 좋아 보인다는 건지 정은은 이해가 안 갔다.
“영은이 진짜 미국 가면 어떡해…”
엄마는 갑자기 또 눈물을 쏟았다.
“가면 가는거지 엄마가 왜 울어.”
정은은 엄마 얼굴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매정한 기집애.”
하룻밤만 지낸다던 엄마는 며칠을 정은의 자취방에서 보냈다. 정은의 잠옷을 꺼내 입고 그녀가 출근한 사이에 빨래도 하고 시장도 봐왔다. 정은도 사별한 노인이 걱정돼 며칠 퇴근을 서둘렀다.
“저녁 다 됐어.언제 도착해?”
엄마는 여섯시 종이 치기가 무섭게 전화를 했다. 직장인의 퇴근시간이 6시인 것은 몇번을 알려줘도 안 되는가보다. 퇴근길 내내 이미 저녁이 다 되었다고 조아대는 목소리가 정은의 뒤를 쫓았다.
“배고파서 혼났어. 하루 종일 너만 기다리는데 좀 빨리오지. 저 영정사진이 신기하게 살아있어. 가만보면 어쩔때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단 말야. 내가 아까 빨래 개면서 너무 서운해서 막 욕을 했어. 그랬더니 눈이 밑으로 쳐진 게 되게 슬픈 표정인거야. 그러다가 또 저녁하면서 ‘정은아빠 김치찌개 좋아하지, 오늘 자기없이 우리끼리 먹을거야’ 하니까 또 표정이 싹 변하는거야. 왜 우리 그 얼굴 알잖아. 장난기가 막 도는 그 얼굴. 쓱 웃으면서 나를 보더라구…”
하루종일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수저를 움직이면서도 말이 끊이지 않았다. 정은은 애써 눈길을 피하는 영정사진을 원룸 한복판에 모셔두고 마치 지금 이 상태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앞에서 밥도 먹고 떠들고 있는 기괴한 상황이 싫었다.
“엄마 이제 집에 가도 되겠네.”
그녀는 정은의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영은이 뭐를 좀 싸 보내야 되지 않을까? 걔 젓갈 좋아하는데 명란젓이랑 김 같은 거라도 좀 사까? 그래도 미국간다는데 돈도 좀 보태주고 해야지.”
정은이 얼어붙었다. 기를 쓰고 독립 자금을 모아 자취방을 구했을 때 물컵 하나 안 사주던 엄마가, 저 좋아서 유학 간다는 동생은 챙겨줄 모양이다.
“너 모아둔 돈 얼마나 있어? 그래도 니가 언니니까 얼마 해줘.”
“내가 왜.”
“왜긴 왜야. 원래 그런 거는 언니가 해주는 거야.”
정은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엄마, 이제 집에 가.”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나 다음 주에 바빠. 엄마 계속 못 봐줘. 영은이네 가 있든지, 엄마 집으로 들어가.”
“야! 너는 딸래미가 어떻게 그러니! 영은이네는 불편하단 말이야! 못돼 처먹었어!”
엄마는 정말 일곱살짜리 아이처럼 토라져서 소리를 꽥 질렀다. 정은은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눈길을 돌렸다. 식탁 위 반찬 접시를 지나, 원룸 한복판에 놓인 영정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사진 속 이상구씨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처럼, 무슨 일이든 결국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얼굴로. 그 순간 사진 속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파르르 떨린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른 흩어지고 소리만 남았다.
물속에서 누군가가 입을 움직이는 것처럼,
멀고 먹먹하게.
왼쪽 귀 안쪽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시작되었다.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