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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 Apr 28. 2017

말주변 없는 김정관의 Names of Beauty


정관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름다움에 대한 대화를 나누자는 말을 듣고 나서 그날부터 바로 생각을 시작했어요. 아름다움이란 게 뭘까. 일단 뜻을 찾아봤어요. 보니까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귀에 들리는 음향이 조화를 이루어서 균형을 이룬 상태’ 정도로 나오더라고요. 그걸 읽으니까 오히려 너무 방대하다는 느낌이 들고 더 복잡해지는 거예요. 생각도 많아지고요. 머리가 아파오면서. (웃음)


그래서 다음으로 해본 게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것도 또 쉽지 않더라고요. 사전적 정의만을 놓고 봐도 사실 구분하기가 곤란한 부분이 있거든요. 정의에 따르면 앞이 보이지 않거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걸 느끼지 못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방법, 이를테면 촉감이라든지 하는 다른 것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름다움을 너무 감각적으로만 한정 짓는 게 제 생각과 맞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암튼 뭐 복잡했어요.


결국 제가 아름다움을 느낀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머지않아 어떤 단어들이 떠올랐는데, 이런 것들이었어요. 인간적인 배려, 존중,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의 모습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라, 그건 어떤 때인가요?


자주 있는 편인데, 시간이 나면 동네를 걸어요.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비가 올 때도 걷고, 눈이 올 때나 밤늦게 걷기도 하고. 그러면 가끔 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도로를 무단횡단 하시는 걸 보곤 해요. 차가 다니는데도 그냥 신호 상관없이 건너시는 거예요. 보면 위험하죠. 그렇다고 선뜻 도와드린다고 도로로 뛰쳐나가기도 어렵고.


아무래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 짜증도 나고 혼자 욕도 좀 해요. 그렇게 제 갈길 지나가면 그만인데, 이게 다 사람이니까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한숨 한번 쉬고 또 도와드리러 가죠. 제가 선하고 아주 착한 사람이라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저도 귀찮고 싫고 짜증도 나죠. 그래도 그냥 사람이니까 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꽤 있잖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걸 볼 때 어쩌면 이게 아름다움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거죠.


정관 씨가 도움을 받은 적은 없으세요?


저는 잘 없어요. 인상이 안 좋은가. (웃음) 제가 딱히 낯선 사람들이랑 친근하게 어울리는 편도 아니고요.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이랑 이렇게 대화도 잘 안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동네를 걷거나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을 자주 보기는 해요. 서로 도와주고, 길 가다 쓰레기 있으면 주워서 버리고. 그게 별 거 아닐 수도 있는데 제게는 아주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벅찰 정도로.


사전적 정의와는 아마 거리가 있을 거예요. 이건 마음의 문제니까요. 사람답게 산다는 게, 조형적으로나 화성학적으로 균형을 잡거나 조화를 이루는 일은 아니죠. 멋지고 예쁘게 보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그걸 폄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 결정된다고 믿는 거예요.


그렇지만 요즘 그러기가 참 쉽지 않잖아요. 주위에 어려운 분들은 많은데 일단 스스로가 다들 힘들다보니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각박함 속에서 이따금 그런 모습들이 다가오니 더 부각되는 면도 있겠죠. 물론 가끔은 사는 게 벅차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있을 거라고 믿어요.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고. 하긴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도 우린 사람이니까요. 마음은 다들 있을 텐데, 행동으로 해내기가 버거워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나서서 뭔가 행동으로 옮기는 분들은 보면 각별하고 아름다워 보여요.


저도 딱히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뭐랄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요. 누구에게나 힘들고 답답한 순간들이 있잖아요. 사람이라는 게 매번 매순간 다 좋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다독거려주거나 하면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도 우린 알고 있잖아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힘들었던 것과 비슷하겠지, 하면서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우리가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제 몫의 버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믿어요. 인생 혼자 사는 사람 없잖아요. 저 사람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누구에게나 함부로 못하죠.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는 결국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뭐 요새는 뭐든 잘 잊잖아요.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곳도 가고 하는 순간들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때그때 감동을 받아도 단편적으로 스치고 지나갈 뿐이지 온전한 개인의 체험으로 깊이 남겨 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SNS도 그렇잖아요. 저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하느라 오히려 놓치는 것도 많고요. 뭔가 붙잡아두려는 시도이기는 한데, 깊은 뭔가로 남지 못하고 뭔가 빗겨 간다는 기분은 들어요.


배려나 존중이란 게 거창한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냥 어디 들어갈 때 뒷사람 기다리면서 문 잡아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전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아이들이 타면 자리 양보해주는 정도인 거예요. 박스 주우시는 어르신 계시면 잠깐 손 좀 빌려드린다든지. 그렇게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거죠. 이게 좋은 일인가, 헷갈릴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요. 그런 체험을 쌓아나가면서 자신의 것으로 남겨두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어요.


확실히 이런 사소한 배려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세상이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요즘 같이 황폐한 이야기가 도는 때는 더 그런 게 간절해지기도 하고요.


요새 뉴스보고 그러면 화도 나고 그러잖아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저 사람들은 이런 생각도 안하고 살 텐데 싶은 마음도 들고요.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주변에는 그냥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특히 작은 도시에서는 더 그렇고요.


전 24살 때 부산에서 마산으로 왔는데, 확실히 좀 달라요. 어딜 가나 아는 사람 마주치기도 쉽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다 친구고. (웃음) 같이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 같이 사는 거죠. 우리끼리 얼굴 붉히고 속상해하고 그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더 드리면서 대화를 마칠까요. 지금 우리가 녹음을 하고 있는데, 사실 살면서 녹음하는 대화는 많지 않잖아요. 어쩌면 정관 씨에게 남는 말은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고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남기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말들을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요. 글쎄요. 지금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 고생하신 어머니께.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본 매거진에 실린 모든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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