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여요.
그런데 이런 말을 낯설어하는 게 의아해요.”
누군가의 말이었다.
왜 스스로를 작게 여기냐는 말처럼 들렸다.
나도 생각해 본 적 있었다.
난 뭘 해도 잘할 것 같은데,
왜 어떤 것도 못할 것 같을까.
인정받는 말을 들어봤는데,
왜 기억나는 말은 없을까.
누군가의 말과 내 고민이
한쪽에 머물렀고,
그 끝에서 한 마디를 만났다.
중요한 그날에 아빠와 다퉜다.
상견례에 아빠는 편하게 옷을 입겠다고 했다.
나는 다른 옷을 입으라고 말했고, 큰 소리로 이어졌다.
아빠는 가네, 안 가네 하다가 갔고, 말없이 식사만 했다.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아빠가 말했다.
“얘가 다른 건 몰라도 심부름은 잘할 겁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숨고 싶었다.
겨우 울음을 참았다.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부족한 게 많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드라마에서 듣던 말과 달랐다.
상견례 자리에서의 칭찬이 심부름이라니.
부끄러움의 크기만큼, 자존감과 자신감도 사라졌다.
내 기억에, 어릴 때부터 칭찬은 별로 없었다.
형편도, 부모님의 관계도 좋지 않았지만,
나는 사고 치는 일 없이 잘 살아왔다.
대학교 때 장학금을 한 번 받았는데,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나를 자랑한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 들었지만,
나에게는 어느 것도 닿지 않았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아빠의 칭찬은
상견례에서의 그 말뿐이다.
씁쓸하게도,
어쩌다 시부모님의 심부름을 할 때면
그 말이 떠오른다.
왜 나를 작게 보는가.
이 질문 끝에서 떠오른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다.
다만, 상견례에서의 그 말을 붙잡고 살아온
나에게는 말하고 싶다.
아무 말이나 다 마음에 담지 말라고.
그렇게 작고 어설픈 칭찬 하나가
지금까지 나를 작게 보는 말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