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면 이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미세먼지 뉴스가 쏟아질수록 수용자는 혼돈에 빠지기 쉬울 테니, 사태의 핵심을 최대한 굵게 정리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서울부터 베이징까지,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당진부터 중국 탕샨 제철공장까지 제한된 시간에서 최선을 다해 훑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간 혼탁한 대기 속을 마스크도 없이 누볐지만, 제 생각만큼은 꽤 맑게 정리가 됐답니다. 물론 그나마요.
(본 취재후기는 사견이며, 회사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게다가 저희 회사는 고정된 입장이나 지침도 없어요. ‘언론’사니까요.)
(스압주의보2단계)
베이징 경산공원에서 찍은 하늘. 너네들도 고생이 많다...
“미세먼지는 중국 탓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장 쉽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지요. 칭찬 댓글도 쏟아져요. 기자 입장에서 팩트도 왜곡하지 않으면서 여론에도 호응하는 좋은 결론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탓도 있다”, “중국 탓이 꽤 많다”겠지요. 2017년 우리나라와 NASA와의 공동연구에서도 중국 등 국외 영향이 48%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빅데이터 분석 등을 종합해보면 대략 30~70%까지 다양하지만요.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여기서 출발하는 여론은, 지금까지 추이로 보면 대략 이렇게 흐릅니다.
1. 중국 탓이 많다 → 2. 그런데 정부가 중국에 할 말을 못 한다 → 3. 그래서 국내 탓으로 돌리려고만 한다 → 4. 국내는 곧 우리고, 우리는 곧 나도 포함됨? → 5. 중국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 → 6. 웃기지 마. 미세먼지는 문세먼지!
성긴 논리지만 저희들 기사에 수천 개씩 달린 비판 댓글들이 이런 추이를 보이는 것도 현실입니다.물론 이 거대한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는 없으니, 정부로 화살이 향하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한편 반대쪽 논리도 있습니다. 미세먼지 외교전은 2013년부터 시작됐는데, 그 당시의 대통령은 뭘 했냐는 거죠. 그래서인지 ‘문세먼지’, ‘근세먼지’ 같은 말들이 댓글 속에서 쉽게 오갑니다.
이렇게 정치적 대리전이 된 미세먼지 논쟁에서 제가 ‘우리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혹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로 삼자’라고 한다면? 양쪽 모두에게 기레기 소리를 듣기 십상이겠지요. 사실 그래 봤자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드는 수준도 미약할 거고요. ‘처음’에는요.
그러나 제가 취재를 하며 내린 결론은, 결국 미세먼지는 문세먼지도 근세먼지도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받아야 하겠지요. 정부가 받을 비판을 시민들에게 돌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비판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싶어요.
그럼 제일 앞에 제기했던 세 가지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중국 친황다오의 거대한 미세먼지 차단벽. 내륙쪽만 막아두고 서해쪽은 열어놨다.
1. 먼저 미세먼지는 누구 탓인지 볼까요?
중국 탓, 분명히 큽니다. <로드맨 - 미세먼지 2편>에서도 저희는 중국의 꼼수를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베이징부터 살고 보자며 공장을 인근으로 옮기고 있었지요. 우리가 의심한 것처럼 서해 인근, 혹은 서해로 향하는 바람길에도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아 보였어요. 협력도 하고, 외교적으로 큰 충돌을 피하는 선에서 중국에게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환경부의 서해 관측 항공, 다시 시작된 NASA와의 공동 연구 등이 그 증거지요. 보도에 담았듯이 ‘한중환경협력센터’도 설립했어요. “왜 이제와서?”라고 묻는다면, 정부는 비판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현시점에서 보겠습니다. 제 판단기준에서는 여기서 중국에 더 강하게 나가면 외교적 충돌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미세먼지가 외교전쟁으로 비화되면 더 피해를 볼 나라는 누구일까요? 아마 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63빌딩 옥상에서 본 3월의 서울 하늘(마이크를 잡은 기자는 제가 아닌 로드맨입니다. 저는 기획자예요.)
그럼 ‘우리 탓’으로 넘어와볼까요?
지난해 7월. 중국에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한여름이었지만, 1주일간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최악을 기록했습니다. 중국에서먼울산은무려170 마이크로그램까지 농도가 올라갔죠. 기상예보를 시각화한 자료를 보면 당시 서해는 맑았어요. 이런 날이 매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정부가 이런 국내 요인을 줄이는 데에는 최선을 다 하고는 있는 걸까요?
중국 탓도 있고 국내 탓도 있다, 라고 답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무책임한 대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링크해드린 미세먼지 2편(중국편)과 3편(국내편)을 보면, 교집합이 보일 겁니다.
바로 석탄화력발전소와 대형 공장들입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도, 대개 서해로 향하는 바람길에 중국의 석탄발전소와 제철 공장들이 밀집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 탓만 하기도 멋쩍습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수치도 석탄발전소나 대형 공장단지 인근 도시들이 압도적으로 높았지요.
미세먼지는 중국 탓과 국내 탓이라기보다, 값싼 석탄으로 발전을 해온 시대의 탓이라는 겁니다. ‘중국에 할 말 못 하는 정부’ 탓보다, ‘오염물질 배출을 제대로 감시 못한 정부’ 탓이더크다는 겁니다. 수십년간쌓인석탄과오염물질에대한무관심이눈에보이지도않는미세한괴물을탄생시킨셈이죠.중국이든 우리나라든 그 탓에서 피해 갈 길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중국에 세계 석탄발전소의 40%가 몰려 있으니 책임이 더 크겠지요. 다만 우리도 대체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못 하고 있으면서, 중국에 “너네가 많이 내뿜으니 너네가 줄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미세먼지가 ‘석탄의 시대’ 탓이라면, 우리의 해결책은 어렴풋이 보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논의할 시점인 것 같아요. 도쿄 대지진으로 원전의 위험성을 실감했듯이말이에요. 공기를 죽이고 전기를 얻는 값싼 세상과 서서히 종언을 고할 때인 것 같습니다.
대체가 가능하냐고요?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연구자료는 많습니다. 독일과 같은 선진 사례들도 있고요. 방송에 담지 못했지만, 저희가 인터뷰했던 그린피스 독일사무소의 원전 수석전문가 숀은 “재생가능에너지의 지리적*환경적 측면에서 독일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은 더 깊이 연구해보겠습니다.
서울시의 노후차량 운행 감시센터
2. 그럼 두 번째 질문. 정부는 할 일을 잘하고 있는 걸까요?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배귀남 미세먼지 사업단장은 정부의 정책을 ‘배출’과 ‘노출’로 분리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이제껏 ‘배출’을 억제하려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량을 줄이고, 노후 경유차를 단속하는 일 등이었지요. 맞는 방향 같지만 너무 오래 걸립니다. 배출이 억제되는 게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요. 그런 장기적 정책들이 국민의 피부에 와 닿기나 할까요? ‘조금씩 줄여 10년 후에는 맑은 하늘이 될 것이다’는, 당장 하루하루 미세먼지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 시민들의 괴로움을 달래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노출 예방’도 중요합니다. 배출이 줄어들면 노출이 자연스레 줄어들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변화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예컨대 기업의도움을받아일선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무상 보급했지요. 우리나라 사람은 평균적으로 하루의 87%를 실내에서 보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실내 공기부터 예산을 들여 개선하겠다는 방향은 좋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야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컨대 택배기사, 야외판매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같은 분들이요. 아직 이 분들을 위한 대책은 눈에띄게부족합니다. 지자체와 정부는 여기서 비판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저를 비롯한 언론은 시민을 대리해, 정부의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을 감시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기자로서의 저 말고, 시민으로서의 저는 뭘 해야 할까요? 계몽 시대도 아닌데 우스운 소리 같지만,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사소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하자는 거지요. 10년 된 우리 집 경유차에 돈이 더 들더라도 매연 저감장치 필터를 자주 교체해주고,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석탄화력발전을 줄여가는 대가로 전기세가 조금 오르더라도 감당하는 정도라도요. 환경 때문에 전기세 1,2천 원 오르는 걸로 정부 탓하며 욕하고 싶진 않습니다.
거친 비유일지 모르지만 IMF 때 우린 금을 모은 기억이 있습니다. 전 세계 금값까지 떨어뜨릴 정도였다지만 수치로 볼 때는 국난을 극복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모두가 돌반지 팔아가며 집에 있던 금붙이를 싼 값에 내어준 운동 자체가, 국민이 정부에 주는 강력한 경고이자 메시지였을 터입니다. 국민이 이 정도 애쓰는데 국가가 제대로 못한다면? 선출직으로 권력을 얻은 정부는 그걸 가장 두려워하겠지요.
미세먼지도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를 압박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유권자의 무서운 실천력입니다. 이 시대에 웬 새마을 운동 같은 생각이냐고요? 고리타분해 보여도 이게 한 달 취재 끝에 제가 얻은 결론인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베이징 자금성과 서울 여의도의 닮은 하늘.
중국 탓 vs 국내 탓
문세먼지 vs 근세먼지
누구라도 탓하고 싶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이런 식의 이분법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분법은 전쟁의 사고방식입니다. 양극단 사이에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말살하니까요. 중국 탓과 국내 탓은 나눌 문제가 아니라, 더해서 풀어야 할 공식입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정치적 대리전으로 방향이 꺾이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중국 탓하면 반문 / 국내 탓하면 친문”이라는 식으로 여론의 전쟁이 벌어지고, 그게 곧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꿔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언론은또그걸이용하고요.쉽고편하고(적어도한쪽에서는)박수받는길이니까요.
긴 글 읽어주셨는데 속 시원하게 못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진실은 늘 찝찝하고 가려운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 법이라 믿습니다. 그 지점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게 제가생각하는언론의 몫이고요.
글을 쓴 지난주말 하늘은 아껴두고 싶을 만큼 무척 맑았답니다. 글 대신 사진으로나마 속 시원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