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라는 게 시의성이 중요하다 보니, 한창 불법촬영이 이슈가 될 때 ‘잘 팔리는’ 뉴스를 기획해보자는 심산이었죠. 팀원들이 피해 여성 사례를 섭외하고 통계를 모으다 보니 단 한 편의 뉴스로는 모자라겠다는 판단이 들어 2부작이 되었습니다.
불법촬영은 피해도 방대한 데다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는 만큼 뉴스로 만들기는 비교적 수월해 보였습니다. 기자들은 이런 걸 ‘얘기된다’고 표현하는데, 보도 가치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 수 있겠다는 일종의 은어입니다. 여하튼 ‘얘기가 되기에’ 쉽게 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뉴스데스크 <로드맨> 취재후기입니다. 저는 로드맨이 아니라 기획pd(겸 팩트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건데?’였습니다.
예컨대 비리를 고발하는 뉴스는 취재하는 과정, 그러니까 비리를 밝혀내는 게 어렵지 결론은 비교적 수월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 ‘취재해봤는데 얘가 문제야’라고 말해주면 되니까요. 정부의 정책 관련 뉴스도 ‘이 정책이 올바른 방향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판단하는 데에 오랜 공을 들이지만 판단을 내리면 기사 쓰는 건 빠르게 진행되는 편입니다. 그에 비해 불법촬영 보도는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문제의식도 명확하고 현상도(범죄 통계) 뚜렷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해결책은 ‘처벌 강화’였습니다. 불법촬영 범죄자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처벌은 다른 나라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약한 편입니다. 매년 평균 6천여 명이나 잡히고 있지만, 검사가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비율은 40%도 안 되니까요. 여전히 발생한 범죄의 절반 이상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거죠. 재판에 가도 실형을 선고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정도고, 절반 가까이는 벌금형에 그칩니다. 판례를 살펴보니 대부분 반성하고 있거나 초범이라는 게 이유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재범률은 무려 75%에 달합니다. 비판이 일자 대법원은 올 하반기에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다시 세우기로 했습니다.
(처벌 강화에 대한 근거는 경쟁사인 SBS의 데이터저널리즘 팀 마부작침에서 더 자세히 다뤄주었습니다. 저희는 방송 뉴스라 시간의 제약이 따랐다고 변명할게요..)
이러한 근거를 발판으로 ‘처벌을 강화하자’며 뉴스를 끝내도 어느 정도 완결성이 있을 터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던져졌습니다.
‘처벌 강화만이 유일하며 궁극적인 해결책인가?’
많이들 얘기하듯이 법은 ‘최소한’입니다. 사회문제가 터졌을 때 합의하는 첫 단계는 사회구성원이 인식의 공유를 이루는 것일 테고, 그게 안 되면 두 번째 단계로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고, 그것마저도 안 되면 마지막 단계로 법의 판단에 맡기는 게 순서지요. 처벌만강화하자는 결론은 그런 차원에서 양면성이 있는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자의 대다수인 여성들 입장에서는 1단계(인식의 공유)도, 2단계(정치적 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3단계(처벌 강화)를 호소하고 있을 것입니다. 혜화역에 모여서 그렇게 외쳤지만 체감할 만한 인식의 변화는 없었고, 정치적으로라도 좀 풀어주길 기대했더니 국회는 관련 법을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시켰고, 심지어 행정부는 1년 넘도록 단속해도 공용화장실 불법카메라하나 찾아내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최후의 보루인 법적 처벌이라도 세지길 바라는 수밖에요.저 역시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처벌 강화에 생각의 무게를 싣게 되었고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오직 ‘처벌 강화’로만 매듭지어지는 최근의 경향도 간과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해결을 엄정한 법에만 기댈수록 앞서 말씀드린 1,2단계가 점점 무력해질 테니까요. 짧은 리포트가 아닌 기획 보도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것까지 고려하고 싶었습니다. ‘엄격한 법 집행’이 사회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런 방식'만' 반복된 사회는 대개 머지않아 무너지거나 독재 체제에 시민의 권리를 내어주고 말았거든요.처벌 강화는 명확하고 쉬운 선택지지만, 토론과 타협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극단적인 사회로 향하는 지름길이기도 한 거죠.저를 비롯한 대중이 보기에 언뜻 수용하기 힘든 판사분들의 관대한 판결들도 일부 이런 우려에서 기인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처벌 강화보다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보자’라고 말을 꺼내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았고, 그 사이 무수한 피해자가 추가로 생겨나고 있을 만큼 시급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쉽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 역시 ‘누릴 거 다 누린’ 남성이라서절박함 없이 고상한 시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니까요.
20대부터 40대까지, 여성부터 남성까지, 정규직부터 프리랜서까지 꽤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저희 팀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뒤 몇 차례 구성회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모를 정답이라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마이크를 내어주자고요. 완벽한 답이 없는 보도가 될 수도, 어쩌면 시청자에게 결론을 떠넘긴 무책임한 뉴스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올바른 대안이라고 우리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2부짜리 기획연재가 마무리됐습니다. 1부는 <탐지기 들고 다니는 사회>였습니다. 지자체마다 대대적으로 화장실 불법카메라를수색하고 나섰지만 2년째 실적은 ‘0건’. 결국 몰카탐지기를 직접 구매하거나 지자체에서 대여받아서 다니는 여성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회가 보호해주지 못하니 개인이 직접 해결하고 있는 현상을 1부에서 다뤘습니다.
2부 보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모두 5명의 여성들에게 75초가량의 시간을 건넸습니다. 물론 할 말을 1%도 못 담을 시간이지만, 통상적인 방송뉴스의 인터뷰가 길어야 15초 이내라는 걸 감안할 때 저희 입장에서는 보편의 공식을 깨면서 성심껏 확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이는 불법촬영 피해 여성 두 명, 탐지기를 구매해서 다니는 여성, 지자체 여성정책 실무자, 그리고 여성 시민단체의 담당자를 모셨습니다. 방송 뉴스에 자주 나오는 무슨 단체 대표나 교수, 지자체장 등은 제외했습니다. 최대한 불법촬영 피해에 공감하고 이와 관련한 실무를 도맡았던 사람들이 피부로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분들께 물었습니다. 뭐가 가장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섯 분의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두 분의 피해자는 처벌 강화가 가장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말씀하셨고, 누군가는 대다수 남성들의 공감능력 부족을 꼬집었습니다. 누군가는 불법촬영물의 산업적 유통 체제를 짚어줬고, 누군가는 인식의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완벽한 정답일 수 없기에, 최대한 다 담았습니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이 기획보도는 큰 ‘한 방’이 아니었습니다. 거창한 단독도 아니고, 딱히 새로운 스트레이트(시청자에게 새롭게 전할 뉴스)도 없었으니까요. 그저 지난 2년을 돌아본 종합기사 정도였죠. 그러나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뭔가 거창한 보도를 해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팀은 불법촬영에 관한 보도를 이렇게 끝맺음했다는 걸요. 기자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건 취재가 부족했다는 뜻이기에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그 부끄러움을 떠안는 것도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보도를 하다 보면 제 자신이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남의 슬픔을 멋지게 보도하여 제 자랑거리 삼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이 글조차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완벽한 대안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섣불리 ‘이게 정답’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고, 덕분에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버린 보도가 되었지만 후회하진 않고 있어요. 그저 '야동 문화'에 자유롭지 않았고 성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도 체화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흔한 남성 중 한 명으로서 반성문 쓰듯 취재하고 기획했습니다.
저는 '나도 찍혔을까'의 공포를 평생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불법 촬영 피해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온 세상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며 남은 삶을 보내고 있었겠죠. 그런 피해자들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이 보도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의 운전대는, 어쩌면 저와 같은 남성들이 쥐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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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릴레이 인터뷰의 배경음악은 캐나다 밴드 braids의 ‘miniskirt’로 골랐습니다. 일부 가사는 비방용이라 무음 처리해야 했지만 그래도 가사 때문에 고른 노래랍니다.)